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의 첫 회의가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편집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실 벽면에 <한겨레> 지면 개편을 위한 시험판이 가득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창간기획] 소통하는 한겨레를 만들 명실상부한 ‘열린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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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5년 창간정신 진화 보고서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는 소통하는 한겨레를 만들 명실상부한 ‘열린 편집국’ 실험이다. 편집국 간부들이 중심이 돼 뉴스를 선택하고 의제를 설정해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공유·협력’의 기치 아래 독자·시민과 함께 신문을 만드는 협력 제작 방식이다.
한겨레가 창간 25돌을 맞아 신뢰와 공감을 높이기 위해 발족한 열린편집위원회는 외부 인사 11명과 내부 인사 6명으로 구성됐다. 외부 인사들은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할 뿐 아니라 노동, 중소기업, 대기업, 지역, 시민사회, 다문화 등 우리 사회의 주요 부문을 아우르고 있다. 이들은 폭넓은 경험과 합리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겨레의 논조와 의제, 공정성, 심층성 등을 평가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겨레가 다뤄야 할 새로운 이슈의 편집·제작 방향에 대해서도 제언한다. 열린편집위원회에 참여하는 편집 부문의 내부 인사들은 이 토론장에서 나온 ‘외부 목소리’를 지면 제작에 적극 반영하게 된다. 회의는 매달 한 차례씩 열린다.
제1기 열린편집위원회의 첫 회의는 지난 9일 아침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곳은 매일 오전과 저녁에 한겨레 편집국 편집회의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신인령 위원장이 진행한 첫 회의에서는 △지난 25년간 한국 사회에서 한겨레가 해온 역할과 부족했던 점 △진보적 언론으로서 한겨레의 정체성 △한겨레가 앞으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의제(화두) 등을 중심으로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 내용을 소개한다.
■ 한국 사회와 한겨레 25년
신인령 한겨레 탄생은 기적과 같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젊었는데 감동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지난 25년간 한국사회와 언론시장에서 한겨레가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부족했던 점은 무엇인지부터 얘기해보자. 우선 한겨레 쪽에서 이번에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를 발족하게 된 배경을 간히 말해주는 게 좋겠다.
박찬수 최근 편집국장을 2년간 맡았다. 한겨레를 위한 쓴소리와 제언들을 듣기위한 자리다. 듣기 싫은 말이든 좋은 말이든 가감없이 전달해주면 좋겠다. 열린편집위원회 구성의 취지와 배경은 ‘한겨레 창간 25주년 미래기획태스크포스’ 팀장이 간단히 설명하겠다.
한겨레 25년은 민주화의 역사
자본권력 감시는 더 끈질겨야
불공정·불통·부패 해소 매진을 박창식 지난 몇달간 창간 25년 미래기획TF 팀장을 맡아 일하면서 한겨레 창간 정신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했다. 25년 전 창간할 때 창간 정신을 ‘민주주의, 분단 극복, 민족 통일, 민중 생존권 과제’로 요약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언론활동의 원칙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설정했다. 대체로 그런 원칙을 갖고 언론활동을 하면서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신문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고민이 부족했다. 지난 몇달 간 여러 사내외 의견을 들으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결과 저희가 잠정 정리한 게 창간 때의 과제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은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민주주의 과제만 해도 독재나 국가권력의 폭력성에서 공공성, 인권, 참여, 쌍방향 소통, 공론장의 변화 등으로 변화하고 다양해졌고, 분단 극복 및 통일문제도 평화, 화해, 반테러, 다민족, 다문화 공존처럼 분화되고 있다. 언론활동 역시 신문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즉 먹이면 먹어줄 것이다라는 과거의 관념에서 탈피해 함께 만드는 개념으로 가야한다. 이를 ‘개방·공유·협력’이라는 세 가지 열쇳말로 정리했다. 한마디로 ‘소통’이고, 광고 카피로 하면 ‘말 거는 한겨레’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를 만들었다. 제정임 2008년 출간된 ‘한겨레 20년사’ <희망으로 가는 길>을 받아 읽어보니 감동적이었다. 체포도 당하고 두들겨 맞으면서 한겨레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한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사실 한국에서 자신의 역사를 부끄럼 없이 자랑할 수 있는 신문사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한편으론 앞으로 10년, 20년 더 흘러 한겨레 30~40년사를 쓸 때도 당당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은 용감했지만 자본권력을 향한 고발과 폭로, 감시 역할에서 한겨레가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권력 비판이나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들의 상황을 다른 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심히 보도해온 건 인정하지만, 우리 사회가 필요할 정도로 충분히 지속적으로, 또 독자들이 흥미롭게 느끼고 친절하게 이해할 만큼 잘해왔는지 의문이다. 어두운 기억이 있다면, 김용철씨(변호사)가 삼성 관련 책을 펴냈을 때 이 책 광고를 한겨레가 사실상 거부했다던데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지 좀 의문이다. 막강한 권력으로 떠오른 자본을 감시하는 역할을 더 끈질기게 해줬으면 좋겠다. 김영배(구청장) 한겨레 탄생 자체가 권력의 민주화 과정이었다. 국민의 열망을 안고 권력과 제도가 민주화되는 도상에서 중요한 기제로 언론의 기능이 요구됐고, 이 과정에서 한겨레가 중요한 역할을 핵심적으로 담당했다. 문제는 지금 시기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이다. 지난 월스트리트 점거 사건 등에서 보듯 권력과 제도가 민주화됐다해도 자신의 삶은 진전된 게 없는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면 내 삶이 좋아진다, 이것이 이 시대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바다. 국가의 시대, 시장의 시대를 지나 이제 ‘시민의 시대’가 돼야 한다. 시민적 삶의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시민적 삶을 향상시키고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경제이고 좋은 정치 아닌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천착하고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정치도, 언론 지면도 할애돼야 한다. 우리 정치가 외면받듯이 대다수 언론 역시 외면받는 이유는 내 삶의 이야기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기사에 많이 쓰기 때문이다. 박종원 한겨레가 민주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고 진보 영역을 세우는데도 공헌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문화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작년에 바닷가에 놀러가서 보니 옆에 엄청 큰 텐트를 친 어떤 가족이 왔는데 가만히 보니 부인은 텔레비전 보고 남편은 옆집 사람이랑 술 마시고 애들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더라. 가족들이 같이 놀러왔음에도 물속에서 놀 때를 빼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소통이 안되고 아주 개별적인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엄청난 문화적 변화다. 한겨레가 처음 창간할 때는 시기 적절했고, 진보의 영역을 확장시켰으나 최근의 이러한 변화를 얼마만큼 수용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문화이다. 신문이 ‘오늘’을 진단하는 것이라면 문화를 확장된 영역에서 잘 관찰해야 한다. 문화라고 하면 뭔가 깔끔하고 세련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에서 탈피해, 깊이 있는 관찰에 기반해 문화적 제안을 한겨레가 많이 해주면 다른 신문과 차별화될 수 있을 것같다. 백필규 한겨레가 진보언론으로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온 건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진보의 중요한 또다른 가치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한겨레가 미흡했던 거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시대의 정신은 ‘불공정, 부정부패, 불통’ 이 세 가지의 해소로, 이것이 대선 이전의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라고 본다. 한겨레가 이 점에서 뭔가를 보여주는데는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진영논리와 외연 확대 신인령 한겨레의 정치적 지향과 관련해 ‘진보언론’이라는 데엔 이론이 없지만 그 가치와 지향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것같다. 한쪽에선 진보언론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고 평가하고 다른 쪽에선 진보적 가치에 과도하게 편향돼 왔다고 지적한다. 열린편집위원들은 어떻게 보는지? 박종원 지면에서 인터뷰 인물로 모시는 사람의 성향이 비슷 비슷하다. 보수 신문보다 한겨레가 더 그런 것같다. 이런 경향은 반드시 탈피해야 한다. 진영의 논리로 갑론을박해서 그 에너지로 사회가 추동돼 가던 건 지난 시절의 얘기다. 진영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에 대해 갑론을박을 해야한다. 한겨레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만나게 해주는 매체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지면에 코멘트 등으로 등장하는 전문가는 반드시 다양해야한다.
보수·진보 떠나 의제 적극 던져야
지면 등장 전문가그룹 다양해지길
가방끈 짧은 이들 목소리 안보여 신민영 한겨레가 그동안 잘 해왔으나 이제 변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싶다. 외연을 좀 더 넓혀야 할 것같다. 한겨레가 특정한 동네, ‘그들만의 리그’로 치우친 느낌을 준다. 누군가 집에서 한겨레를 보면 “어느 집은 한겨레 본다”라는 이야기가 돈다. 사무실에서도 “저 친구는 한겨레만 봐” 그런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른바 ‘중위투표자’ 이론에서처럼 좌측 끝이 1, 우측 끝이 100일 경우 좌측을 독자로 삼겠다면 중간인 50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와야한다. 진보 쪽 10명만을 대변하고 90명이 보수 쪽으로 가도록 내버려두면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기사에서 다양성을 통해 많은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진보의 수위도 평균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넓히는 가운데 여러 진보의 가치들을 신문에 담으면 좋겠다. 기사에 인용하는 전문가들의 인적 개방에서 뿐아니라 편집 내용과 방향에 대한 개방도 높여야 할 것 같다. 김영배(구청장)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아 온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문에 담아주는 것,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인 것 같다. 한겨레 프레임은 지나치게 ‘싸우는 프레임’이다. 한쪽만 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비판이 나오는데 그런 면에서 공감한다. 이론적으로 싸울 게 아니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신문 제작방향을 싸우기보다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프레임으로 전환해보는 게 어떨까. 좌우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에 대해 훨씬 더 깊이 천착해야 한다. 그게 앞으로 한겨레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후지이 다케시 민주화가 제도화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저도 한겨레 20년사 책을 봤는데 2005년에 재창간을 선언했을 때가 분기점이 아닐까 한다. 재창간하면서 ‘진보와 보수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한겨레가 자신의 역할을 보수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데 한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진보와 보수 구도로) 설정하면 한겨레가 적극적으로 할 게 없다. 그때부터 한겨레가 방향을 좀 잃은 듯하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한겨레가 적극적으로 무엇을 제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 지향에서)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90년대 이후이다. 그 뒤 진보라고 하면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그런 게 없다. 소위 진보로 분류된 사람들끼리조차 진보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된 것이 없다. 이제 그런 진보와 보수의 낡은 틀을 깨는 데 한겨레가 언론으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남신 한겨레가 소수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한편으론 보이지 않고 대표되지도 못하고 있는 다수의 목소리도 대변해야 한다. 재벌 공화국, 양극화 공화국, 격차사회라는 말을 일반인도 곧잘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선 뒤부터 한겨레가 해야 할 역할이 달라졌다. 87년 이후 한겨레를 빼고서 정치 민주화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겨레는 잘했다. 하지만 97년 이후의 상황은 한겨레를 빼고서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니며, 여기에 진보진영 전체의 딜레마가 있다. 이 문제는 옛 운동권의 침체 및 자기 방향 상실과 연동돼 있다. 비정규, 미조직·중소영세 노동자, 실업자 등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서 배제된 가방끈 짧고 일상이 고통스러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합리적 공론장이 한겨레 지면에 별로 보이지 않는다. ■ 심층·탐사 보도의 현주소는? 제정임 최근 한겨레 편집국에서 탐사보도팀이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박찬수 제가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만들었다가 1년만에 탐사보도팀을 사회부 사건팀과 합쳤다. 전에 ‘한겨레 인(in)’이라는 탐사기획 지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와 유사한 꼭지로 ‘뉴스쏙’이라는 코너를 운용하고 있다. “출입처 기사 말고 ‘한겨레만의 탐사보도’ 늘리라” 제정임 대학생들과 얘기해보면 정치뉴스보다는 한겨레만 하는 탐사보도를 보고 싶다고 한다. 기사들을 보면 발표자료에다 약간 추가 취재해 쓴 기사도 있고 발로 뛰어 쓴 것도 있는데 취재인력이 너무 적어서 그런지 탐사보도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경제 기사의 경우 이건 한국은행 발표자료고 저건 어디 보도자료이고 그런 게 확연하게 보인다. 기업이나 직장인의 입장이 아니라 개별 소비자나 청년실업자가 볼 때 내가 정말 필요한 뉴스, 내가 배울 게 있는 뉴스를 유심히 찾아보지만 그런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인원이 적다면 기획탐사보도 쪽으로 집중배치하고 다른 신문들도 쓰는 (보도자료 의존)기사는 비중을 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영배(부장) 탐사보도에 대한 갈증은 현장 취재기자들도 있다. 경제부 소속 경력 10년 넘은 어느 기자가 최근에 차별성 없는 기사를 내온 매너리즘을 자성하면서 출입처를 따로 두지 않고 경제분야 취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발품을 팔면서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다. 출입처에서 쏟아지는 각종 자료와 발표 때문에 기획취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고 한다. 경제부 회의를 거쳐 그 기자는 출입처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경제면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선 매일 안정적으로 지면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과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정임 안정적인 지면에 대한 고민도 이해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출입처 중심의 생각을 한겨레가 깨주면 좋겠다. 보도자료에 의존한 기사는 적은 인력이 압축해서 작게 다루고, 예컨대 지금 (포스코의 대한항공 여승무원 사건 등) 감정노동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걸 속속들이 털어 와이드하게 펼친 기사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20대는 정보가 많냐 적냐로 판단
‘공공성 회복’ 생활정치 주목해야
‘묻지마 정책’ 막을 정보공개 중요 김영배(구청장) 제가 오기 전에 직원에게 뭘 좀 뽑아오라고 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비교했는데 조선 쪽이 훨씬 감성적인 단어와 논조를 보이고 있었다. 정치, 외교, 안보를 다룰 때도 굉장히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기사 문체였다. 이성적인 문체가 소구력을 가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날 ‘생활과 삶의 시대’에는 공감이 굉장히 중요하다. 탐사보도를 얘기했듯이 이성적인 것보다는 감성에 사람들이 크게 공감한다. 이런 공감을 기초로 신문을 편집 제작하면 좋겠다. 정재권 제가 에디터부문장인데 다른 신문 편집국에는 없는 독특한 직위다. 사내에 여러 선후배 동료들이 있지만 지면을 만드는데 상대적으로 좀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혼이 나야하면 제가 대표로 혼나겠다. 말씀하신 탐사기획,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인터넷 포털 하나만 들어가도 그날 벌어진 일들은 대부분 소화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 신문이 뭘 제공할 것이냐, 그 차별성이 신문의 경쟁력인데 그걸 잘해오지 못했다는 반성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이 회의실 벽면마다 붙어있는 것이 올 하반기 한겨레신문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지면개편 작업들이다. 일종의 시험판 비슷하게 저런 모델들을 만들어보면서 작업하고 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게 소재의 집중성이다. 독자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제공하는 신문을 지향하려 한다. ■ 정치 과잉인가? 이주원 언뜻 보기에 진영, 즉 진보냐 보수냐는 논리 때문에 독자 확장 등에서 막힌다는 생각을 한겨레 스스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요즘 20대는 신문을 보수와 진보로 나눠보지 않는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신문을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신문이냐 적은 신문이냐로 나눈다. 즉 정치에 매몰된 신문인지 소비자를 위한 신문이지 구분한다.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 백지 발행 사태 등 대학신문의 위기가 온 배경에도 학내 (정치적)사안이 자신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생각이 깔려 있다. 진보나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 제공에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어제치 한겨레를 보니 종합면 14개 기사 중에 5개를 빼고 모두 정치기사였다. 다른 신문을 비교해보니 그렇게 정치기사에 매몰되진 않았다. 중장기적으로 한겨레 탐사기획을 준비·보충해서 시점과 관계없이 내보낸다면 독자들의 그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재권 탐사기획이 부족하고 최근 정치기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인데 외부 열린편집위원 모두 각자 몸담고 있는 공간과 삶의 궤적에서 신문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물론 새겨들을 말이지만, 관점과 방향이 이 회의 공간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물론 저희는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여러 마리 토끼를 잡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를 확장하면 1만명, 2만명, 10만명이 천가지의 생각을 갖고 한겨레를 보겠구나 생각한다. 질문했던 것들은 한겨레 편집국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겨레 독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불만이 가장 높은 것도 정치다. 애정이 많기 때문에 비판도 많고 주문도 많다고 여긴다. 요즘 세상의 독자 니즈(요구)를 좇으려면 정치라는 영역을 무시하긴 어렵다. 반면에 그만큼 잘 만들지 못하면 큰 실망을 줄 수 있겠구나싶다. 최근 며칠은 남북관계나 한반도 문제가 빅이슈였고, 한미정상회담 등이 있어서 정치 관련 내용이 많지 않았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편집자 입장에서 보면 한겨레가 탈정치화의 길을 비교적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만큼 정치 기사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탈정치를 가속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김영배(구청장)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는 공익과 공공성 회복이다. 생활정치에 대해 주목하는 게 좋겠다. 단적인 예가 진주의료원 이슈다. 독자들이 진주의료원 사태에 주목하는 건 시민들이 그런 공공성 문제에 목말라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신문에는 진주의료원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 위주로 나오니까 공감하기 좀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든다. 백필규 정치도 중요하지만 한겨레가 앞으로 다룰 화두 중 하나가 정보공개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불투명성이나 도덕적 해이 등은 정보공개가 되지 않는 것과 관련돼 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예산이 정책이란 이름 아래 투입되고 있다. 대기업은 악, 중소기업은 선으로 한겨레가 논조를 펴는 경우가 있는데, 대기업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듯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이 잘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책도 묻지마식 지원이 많은데 기업에 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다. 정보 축적과 공개, 활용이 중요하다. 이것을 한겨레가 집중적으로 다뤄주면 좋겠다. 이태호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참여연대 내부적으로 얘기를 나눠보니 진보적 언론에 기대하는 게 주로 ‘와치독’(감시) 기능이었다. 한겨레가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도 집요하게 권력 감시 기능을 해야 한다. 한겨레가 그동안 그런 역할을 해왔으나 잘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그냥 권력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제시하면서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 탐사보도이기도 할테고, 딸깍발이의 감시 역할이 중요하다. 진영화에 겁낼 필요는 없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때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다만 정치면을 보면 정치적으로 협소한 문제에 대해 정치공학적으로 진영화된 포지션을 강하게 취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과 젊은층 등 독자의 요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인기있는 이야기는 주로 정파적이고 휘발적인 경우가 많다. 가장 휘발성이 높은 게 정치공학적 쟁점이다. 한겨레가 온라인 정서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 감시라는 측면에서 급진적 자세를 취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내부위원 답변 탐사보도 갈증 큰 현장기자는
출입처 배치 빼주기도 창간정신과 진보가치 조화 추구
포털과 다른 차별성 보여주겠다
약자 편들땐 더 정파적이어야
노동현장 르포작가 위촉 어떤가
역사의식 잇는 연재물도 필요 ■ 비정규직 보도와 한겨레 김영희 제가 최근 몇 달간 편집국 편집회의에 참여하면서 고민한 게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기사 발제가 나오면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한겨레가 노동 이야기를 많이 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이 없고 그래야 한다고 하는데, 철탑농성 노동자 이야기를 좀더 공감하는 방식으로 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농성을 계속 중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도 든다. 기사량을 많이 다루기보다는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않나 생각이 든다. 이남신 비정규직이 의제로 떠오르는 것 자체는 좋다. 그런데 지금 정리해고·비정규직 투쟁하는 쪽은 어찌보면 먹고 살만한 곳이다. 정리해고 투쟁은 연봉 높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에서, 비정규 투쟁하는 곳도 공공부문이나 사내하청처럼 비정규직 내 중상위 이상 계층이다. 딜레마가 있다. 미조직, 실업자 등은 조직노동에서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일간지 중 이런 고민을 가지고 노동 일상을 보도할 언론매체가 별로 없다. 그런데 한겨레 지면을 보면 보통 사회면에 노동이 들어가 있거나 복지와 묶여 있다. 노동 지면을 따로 마련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핵심문제가 노동 문제의 심각성,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인데 이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기사가 필요하다. <한겨레21> 기자들이 불법 단기파견 일자리에 직접 위장 취업해 보도해 반향이 컸는데 그런 것들이 한겨레의 강점이다. 우리사회의 선차적 과제를 기사로 담아내는 강단과 실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인력과 예산 투입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 가장 하층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한겨레의 가치 중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은 진전이 있었으나 민생 쪽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이태호 낮은 출산률로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어 앞으로 이주 노동이 많아질 것이다. 참여연대에 대해 예전에는 진보 쪽에서 왜 ‘민중’ 개념을 안 쓰냐고 비판했는데, 요즘엔 ‘시민’이란 말을 쓰지 말라는 애기도 나온다. 이주노동자 증가로 시민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사회의 반반이 될 수 있는데 앞으로 어쩔거냐는 얘기다. 이주노동을 신문에서 소수자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말고 경계를 더 넓혀 공동체성을 찾는 게 필요하다. 후지이 다케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한겨레가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오늘치 한겨레 1면 기사에서 강제추방 이주 여성을 다루기도 했다. 다만 글로벌도 상층 글로벌이 있고, 하층 글로벌이 있는데 하층 글로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만이 글로벌한 건 아니다. 덧붙여, 제가 앞서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 틀을 깨야 한다고 말했는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겨레가 ‘평화’를 강조해야 한다. 한겨레는 자주 안보 부실이라고 정부를 비판한다. 그런 기사를 보면 철저한 위기 관리 능력을 가진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안보를 중시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지향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들은 군사력과 다른 차원에서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겨레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기사로 다뤄오지 않았는가? 안보라는 게 어려운 문제이긴 하나 한겨레가 근본적인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아가,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국민’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나 조선족 등 외부인의 시각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남신 노동문제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쌍끌이하는데 한겨레에서 노동이 점점 실종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겨레가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사실보도에 입각해야 하되 한겨레가 더 정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더 초심을 회복해서, 못나고 다수이지만 시민권조차 박탈된 계층을 대변하는데 더욱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덧붙여,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학교비정규직 기사는 논란이 컸다. 팩트에 기반해 노동운동과 조직운동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겠다. 노동에 대해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했다면, 보도가 갖는 파장을 고려했다면 그렇게 기사가 안 나왔을 것같다.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담당을 전문기자 방식으로 보장해주면 좋겠다. 각종 정보는 카카오톡이나 에스엔에스에서 계속 날아온다. 일간지에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 한겨레의 정체성과 공감 신인령 노동전문기자 문제는, 사람을 충원하는데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외부에서 객원으로 르포작가 등을 위촉해 현장에서 오랫동안 체험·관찰해서 깊이 있는 기사를 쓰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겠다. 어떤 작가가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오랫동안 같이 동거하면서 쓴 책을 봤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수많은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려면 전문 인원이 많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직 문 안 닫고 한겨레가 지속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비용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프리랜서를 두고 운용하면 기쁜 마음으로 응할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신민영 몇 분이 비정규직 이야기가 한겨레에 많이 나와서 기쁘다고 하는데 이러면 한겨레의 외연확대는 좀 멀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신문이 너무 로컬(국내보도) 위주가 아닌가 싶다.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있는데, 국제면이 적냐 크냐가 아니라 정치기사든 경제기사든 시각을 글로벌화하는 게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이 중요한데 그것의 많은 부분이 바깥에서 결정되고 있다. 한겨레를 보면 상대적으로 로컬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글로벌 시각이라는 게 꼭 돈과 인력 투입을 더 해야 확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편집회의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다. 1면 톱기사도 국제나 문화 기사를 자주 배치하면 어떨까싶다. 사회경제적 모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제 쪽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 백필규 한겨레의 진로를 고민할 때 정체성을 지키는 문제와 부수를 확장하고 매출을 늘리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균형을 잡는 시선이 필요하다. 한겨레가 지금까지 약자 대변하는 역할 위주로 해왔는데 새로운 대안 제시는 미흡했다. 대안 제시를 위한 소통에서 정보공개가 중요하다. 예컨대 실업문제 해결 통로는 창업 밖에 없다. 창업의 한 부분으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이 중요하다. 미래에는 20대 청년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에서 학생운동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다 스펙에만 몰려서 그렇지 제약조건만 풀어주면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한 제약이 뭔지 정보를 파악해서 한겨레에서 기획보도를 해주면 젊은층의 관심도 많이 끌고 매출 확장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신인령 탐사보도도 중요하지만 한겨레만이 할 수 있는 연재 기획를 늘려주면 좋겠다.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연재물이 필요하다. 신문은 기록이다. 지난번 한완상 선생이 왜 남북문제 개선을 못했는가와 관련해 살아 있는 사람의 실명을 생생하게 거론했는데, 저는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신문에 역사의식이나 창간 정신을 담아내는 어떤 꼭지를 상설코너로 만들어 한겨레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꾸준히 인식시키는 게 필요하다. 다른 지면은 유연화하고 여러 흥미롭고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더라도, 또 진영논리라는 비판을 듣게 되더라도 그런 꼭지를 만들어 창간 당시 송건호·김금수 선생 등에 이어 지금 세대 기자들이 쓰고, 또 앞으로 후속세대들이 이어서 이 꼭지를 쓰면서 정체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조계완 지금 회의에서 어떤 쪽은 한겨레의 정체성 강화를, 다른 쪽은 공감과 외연 확대를 주로 얘기하고 있는 것같다. 한겨레의 가치를 진보에 둘 것인지 언론상품으로서의 가치에 비중을 둘 것인지에 대한 논란 같다. 언론시장의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한겨레 기존 독자도 잠재적 독자도 사회·정치·문화에 대한 태도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진보 가치를 표방하는 언론도 증가하고, 한겨레만이 용감하게 보도하고 감시·폭로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줄어 든 건 사실이다. 이런 변화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창간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고, 진보적 가치와 언론상품의 가치를 동시에 조화롭게 추구할 필요가 있겠다. 이와 관련해 신문 기사를 심의하다보면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이 아쉬울 때가 제법 보인다. 또, 설득력 있는 다각도의 분석이 좀 미흡한 것같다. 동네 골목상권이나 동네 카센터 문제 또는 ’갑을 사회’ 기사 등에서 위계와 불평등 구조 외에 소비자들의 선호와 선택, 후생이라는 측면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짚어주면 좀더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 ‘중년’ 이미지, 가르치려드는 신문? 윤고은 제가 30대 중반인데 저희 세대가 볼 때 한겨레신문은 진보언론 중에서 ‘중년’이란 이미지가 있다. 이는 25년 역사의 성과이면서 동시에 한계이다. 그에 비해 젊고 유연한 느낌이 드는 진보언론도 있다. 인터넷 쪽 진보언론에 견줘보면 중년의 한겨레 이미지는 안정되고 신뢰성있긴 하지만 약간 몸을 사리는 느낌이 있다. 인터넷 언론에 비해 속도에서 밀리는 뒷북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갑과 을’ 불평등 문제를 보도할 경우 좀 늦게 다루더라도 섹션을 따로 빼서 읽을 수 있는, 이 문제를 온통 되짚어보는 지면을 구성해보면 어떨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지 않아도 그것만 따로 떼서 관련 서적이나 백과사전을 보듯 할 수 있는 그런 섹션을 일주일에 한번 씩이라도 만들면 어떨까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단골 가게도 폐업하고, ’한겨레 인’ 코너도 없어지더라.(웃음) 제정임 한겨레가 비정규직 문제를 기사로 많이 다루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 즉 양의 문제, 우리가 제일 크게 다뤘다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 한겨레에 대한 인상비평을 물어보면 ‘386 아저씨들이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호의를 가진 친구들인데 한겨레에 실리는 지속가능경제 포럼 기사의 경우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 포기했다고 한다. 어떤 기사는 정말 다정다감한데 어떤 건 굉장히 중요한 기사이고 의제임에도 상투적이고 딱딱하다. 여성 일자리 문제를 다룬 기사라고 할 때 어느 대학의 같은 과 사람들을 추적해서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는다. 어려운 문제를 친절하게 쓰는 건 힘들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쉽고 친절하게 써주고, 같은 이슈라도 현장에서 직접 취업을 해봤는데 어떻더라고 하면 더 흥미롭다. 갑을문제 섹션으로 만들어볼 만
‘중년 아저씨’ 이미지 벗고
30대 여성성 편집·제작 접목을 이태호 저희 참여연대를 보면 40~50대 남성이 회원의 대다수다. 20~30대가 적고 여성 비율이 낮다. 그런데 요즘 사회적인 문제 제기를 편향없이 받아들이는 건 30대 여성인 듯하다. 20대는 트랜드가 잘 보이지 않는다. 30대 여성은 살면서 맞부닥치는 구조적 문제를 느끼고, 진보적 요구에서도 이념이 아니라 생활적 감수성으로 받아들인다. 희망버스도 쌍용차 사태도 배낭여행도 그렇게 대안적 삶을 가진 이들이 30대 여성이다. 이러한 30대 여성성을 한겨레 지면의 편집제작에 접목해 반영하는 게 진보적인 언론이 수행해야할 사회운동의 미래가 아닐까 한다. 신인령 저는 옛날 사람이라 신문을 지독히 보는데, 습관적으로 스크랩까지 해야 신문을 다 본 것이 된다. 지금 지난 신문이 산더미 같아서 이사갈 때마다 힘들다. 집에서 한겨레랑 중앙일보를 보는데 요새 중앙일보가 각성을 했는지, 한겨레가 유연하려고 하는지 제가 스크랩해놓고 한겨레인지 중앙일보인지 안 써놓으면 둘이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의미에선 너무 색이 다른 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겨레는 초창기에 우리를 감동시켰던, 자랑스러웠던 그 창간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그 때 그 치열한 정신을 생각할 때면 그 시절 송건호 선생을 비롯한 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가. 젊은 세대 기자들도, 체제의 모순은 그 시절과 다르더라도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한겨레에 들어가면 좋다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창간 당시에 좋은 직장 때려치고 기자하던 정신으로 여전히 한겨레를 선택하는지? 한게레가 물론 진보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진보는 낙관적이고 유쾌해야 한다. 보면 가슴이 애어지면서도 뭔가 유쾌하고 신나는 신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찬수 오늘은 첫 회의이고 창간 25주년 기념회의라 폭넓게 이야기했다. 다음부터는 한달간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기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좋겠다. 6월13일 2차 회의 때 다시 뵙기로 하자. 정리/정환봉 기자,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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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권력 감시는 더 끈질겨야
불공정·불통·부패 해소 매진을 박창식 지난 몇달간 창간 25년 미래기획TF 팀장을 맡아 일하면서 한겨레 창간 정신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했다. 25년 전 창간할 때 창간 정신을 ‘민주주의, 분단 극복, 민족 통일, 민중 생존권 과제’로 요약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언론활동의 원칙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설정했다. 대체로 그런 원칙을 갖고 언론활동을 하면서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신문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고민이 부족했다. 지난 몇달 간 여러 사내외 의견을 들으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결과 저희가 잠정 정리한 게 창간 때의 과제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은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민주주의 과제만 해도 독재나 국가권력의 폭력성에서 공공성, 인권, 참여, 쌍방향 소통, 공론장의 변화 등으로 변화하고 다양해졌고, 분단 극복 및 통일문제도 평화, 화해, 반테러, 다민족, 다문화 공존처럼 분화되고 있다. 언론활동 역시 신문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즉 먹이면 먹어줄 것이다라는 과거의 관념에서 탈피해 함께 만드는 개념으로 가야한다. 이를 ‘개방·공유·협력’이라는 세 가지 열쇳말로 정리했다. 한마디로 ‘소통’이고, 광고 카피로 하면 ‘말 거는 한겨레’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를 만들었다. 제정임 2008년 출간된 ‘한겨레 20년사’ <희망으로 가는 길>을 받아 읽어보니 감동적이었다. 체포도 당하고 두들겨 맞으면서 한겨레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한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사실 한국에서 자신의 역사를 부끄럼 없이 자랑할 수 있는 신문사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한편으론 앞으로 10년, 20년 더 흘러 한겨레 30~40년사를 쓸 때도 당당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은 용감했지만 자본권력을 향한 고발과 폭로, 감시 역할에서 한겨레가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권력 비판이나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들의 상황을 다른 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심히 보도해온 건 인정하지만, 우리 사회가 필요할 정도로 충분히 지속적으로, 또 독자들이 흥미롭게 느끼고 친절하게 이해할 만큼 잘해왔는지 의문이다. 어두운 기억이 있다면, 김용철씨(변호사)가 삼성 관련 책을 펴냈을 때 이 책 광고를 한겨레가 사실상 거부했다던데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지 좀 의문이다. 막강한 권력으로 떠오른 자본을 감시하는 역할을 더 끈질기게 해줬으면 좋겠다. 김영배(구청장) 한겨레 탄생 자체가 권력의 민주화 과정이었다. 국민의 열망을 안고 권력과 제도가 민주화되는 도상에서 중요한 기제로 언론의 기능이 요구됐고, 이 과정에서 한겨레가 중요한 역할을 핵심적으로 담당했다. 문제는 지금 시기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이다. 지난 월스트리트 점거 사건 등에서 보듯 권력과 제도가 민주화됐다해도 자신의 삶은 진전된 게 없는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면 내 삶이 좋아진다, 이것이 이 시대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바다. 국가의 시대, 시장의 시대를 지나 이제 ‘시민의 시대’가 돼야 한다. 시민적 삶의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시민적 삶을 향상시키고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경제이고 좋은 정치 아닌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천착하고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정치도, 언론 지면도 할애돼야 한다. 우리 정치가 외면받듯이 대다수 언론 역시 외면받는 이유는 내 삶의 이야기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기사에 많이 쓰기 때문이다. 박종원 한겨레가 민주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고 진보 영역을 세우는데도 공헌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문화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작년에 바닷가에 놀러가서 보니 옆에 엄청 큰 텐트를 친 어떤 가족이 왔는데 가만히 보니 부인은 텔레비전 보고 남편은 옆집 사람이랑 술 마시고 애들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더라. 가족들이 같이 놀러왔음에도 물속에서 놀 때를 빼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소통이 안되고 아주 개별적인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엄청난 문화적 변화다. 한겨레가 처음 창간할 때는 시기 적절했고, 진보의 영역을 확장시켰으나 최근의 이러한 변화를 얼마만큼 수용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문화이다. 신문이 ‘오늘’을 진단하는 것이라면 문화를 확장된 영역에서 잘 관찰해야 한다. 문화라고 하면 뭔가 깔끔하고 세련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에서 탈피해, 깊이 있는 관찰에 기반해 문화적 제안을 한겨레가 많이 해주면 다른 신문과 차별화될 수 있을 것같다. 백필규 한겨레가 진보언론으로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온 건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진보의 중요한 또다른 가치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한겨레가 미흡했던 거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시대의 정신은 ‘불공정, 부정부패, 불통’ 이 세 가지의 해소로, 이것이 대선 이전의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라고 본다. 한겨레가 이 점에서 뭔가를 보여주는데는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진영논리와 외연 확대 신인령 한겨레의 정치적 지향과 관련해 ‘진보언론’이라는 데엔 이론이 없지만 그 가치와 지향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것같다. 한쪽에선 진보언론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고 평가하고 다른 쪽에선 진보적 가치에 과도하게 편향돼 왔다고 지적한다. 열린편집위원들은 어떻게 보는지? 박종원 지면에서 인터뷰 인물로 모시는 사람의 성향이 비슷 비슷하다. 보수 신문보다 한겨레가 더 그런 것같다. 이런 경향은 반드시 탈피해야 한다. 진영의 논리로 갑론을박해서 그 에너지로 사회가 추동돼 가던 건 지난 시절의 얘기다. 진영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에 대해 갑론을박을 해야한다. 한겨레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만나게 해주는 매체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지면에 코멘트 등으로 등장하는 전문가는 반드시 다양해야한다.
제1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하니동산’에 모였다. 신소영 기자
지면 등장 전문가그룹 다양해지길
가방끈 짧은 이들 목소리 안보여 신민영 한겨레가 그동안 잘 해왔으나 이제 변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싶다. 외연을 좀 더 넓혀야 할 것같다. 한겨레가 특정한 동네, ‘그들만의 리그’로 치우친 느낌을 준다. 누군가 집에서 한겨레를 보면 “어느 집은 한겨레 본다”라는 이야기가 돈다. 사무실에서도 “저 친구는 한겨레만 봐” 그런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른바 ‘중위투표자’ 이론에서처럼 좌측 끝이 1, 우측 끝이 100일 경우 좌측을 독자로 삼겠다면 중간인 50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와야한다. 진보 쪽 10명만을 대변하고 90명이 보수 쪽으로 가도록 내버려두면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기사에서 다양성을 통해 많은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진보의 수위도 평균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넓히는 가운데 여러 진보의 가치들을 신문에 담으면 좋겠다. 기사에 인용하는 전문가들의 인적 개방에서 뿐아니라 편집 내용과 방향에 대한 개방도 높여야 할 것 같다. 김영배(구청장)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아 온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문에 담아주는 것,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인 것 같다. 한겨레 프레임은 지나치게 ‘싸우는 프레임’이다. 한쪽만 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비판이 나오는데 그런 면에서 공감한다. 이론적으로 싸울 게 아니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신문 제작방향을 싸우기보다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프레임으로 전환해보는 게 어떨까. 좌우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에 대해 훨씬 더 깊이 천착해야 한다. 그게 앞으로 한겨레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후지이 다케시 민주화가 제도화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저도 한겨레 20년사 책을 봤는데 2005년에 재창간을 선언했을 때가 분기점이 아닐까 한다. 재창간하면서 ‘진보와 보수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한겨레가 자신의 역할을 보수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데 한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진보와 보수 구도로) 설정하면 한겨레가 적극적으로 할 게 없다. 그때부터 한겨레가 방향을 좀 잃은 듯하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한겨레가 적극적으로 무엇을 제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 지향에서)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90년대 이후이다. 그 뒤 진보라고 하면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그런 게 없다. 소위 진보로 분류된 사람들끼리조차 진보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된 것이 없다. 이제 그런 진보와 보수의 낡은 틀을 깨는 데 한겨레가 언론으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남신 한겨레가 소수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한편으론 보이지 않고 대표되지도 못하고 있는 다수의 목소리도 대변해야 한다. 재벌 공화국, 양극화 공화국, 격차사회라는 말을 일반인도 곧잘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선 뒤부터 한겨레가 해야 할 역할이 달라졌다. 87년 이후 한겨레를 빼고서 정치 민주화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겨레는 잘했다. 하지만 97년 이후의 상황은 한겨레를 빼고서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니며, 여기에 진보진영 전체의 딜레마가 있다. 이 문제는 옛 운동권의 침체 및 자기 방향 상실과 연동돼 있다. 비정규, 미조직·중소영세 노동자, 실업자 등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서 배제된 가방끈 짧고 일상이 고통스러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합리적 공론장이 한겨레 지면에 별로 보이지 않는다. ■ 심층·탐사 보도의 현주소는? 제정임 최근 한겨레 편집국에서 탐사보도팀이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박찬수 제가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만들었다가 1년만에 탐사보도팀을 사회부 사건팀과 합쳤다. 전에 ‘한겨레 인(in)’이라는 탐사기획 지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와 유사한 꼭지로 ‘뉴스쏙’이라는 코너를 운용하고 있다. “출입처 기사 말고 ‘한겨레만의 탐사보도’ 늘리라” 제정임 대학생들과 얘기해보면 정치뉴스보다는 한겨레만 하는 탐사보도를 보고 싶다고 한다. 기사들을 보면 발표자료에다 약간 추가 취재해 쓴 기사도 있고 발로 뛰어 쓴 것도 있는데 취재인력이 너무 적어서 그런지 탐사보도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경제 기사의 경우 이건 한국은행 발표자료고 저건 어디 보도자료이고 그런 게 확연하게 보인다. 기업이나 직장인의 입장이 아니라 개별 소비자나 청년실업자가 볼 때 내가 정말 필요한 뉴스, 내가 배울 게 있는 뉴스를 유심히 찾아보지만 그런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인원이 적다면 기획탐사보도 쪽으로 집중배치하고 다른 신문들도 쓰는 (보도자료 의존)기사는 비중을 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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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회복’ 생활정치 주목해야
‘묻지마 정책’ 막을 정보공개 중요 김영배(구청장) 제가 오기 전에 직원에게 뭘 좀 뽑아오라고 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비교했는데 조선 쪽이 훨씬 감성적인 단어와 논조를 보이고 있었다. 정치, 외교, 안보를 다룰 때도 굉장히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기사 문체였다. 이성적인 문체가 소구력을 가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날 ‘생활과 삶의 시대’에는 공감이 굉장히 중요하다. 탐사보도를 얘기했듯이 이성적인 것보다는 감성에 사람들이 크게 공감한다. 이런 공감을 기초로 신문을 편집 제작하면 좋겠다. 정재권 제가 에디터부문장인데 다른 신문 편집국에는 없는 독특한 직위다. 사내에 여러 선후배 동료들이 있지만 지면을 만드는데 상대적으로 좀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혼이 나야하면 제가 대표로 혼나겠다. 말씀하신 탐사기획,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인터넷 포털 하나만 들어가도 그날 벌어진 일들은 대부분 소화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 신문이 뭘 제공할 것이냐, 그 차별성이 신문의 경쟁력인데 그걸 잘해오지 못했다는 반성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이 회의실 벽면마다 붙어있는 것이 올 하반기 한겨레신문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지면개편 작업들이다. 일종의 시험판 비슷하게 저런 모델들을 만들어보면서 작업하고 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게 소재의 집중성이다. 독자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제공하는 신문을 지향하려 한다. ■ 정치 과잉인가? 이주원 언뜻 보기에 진영, 즉 진보냐 보수냐는 논리 때문에 독자 확장 등에서 막힌다는 생각을 한겨레 스스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요즘 20대는 신문을 보수와 진보로 나눠보지 않는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신문을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신문이냐 적은 신문이냐로 나눈다. 즉 정치에 매몰된 신문인지 소비자를 위한 신문이지 구분한다.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 백지 발행 사태 등 대학신문의 위기가 온 배경에도 학내 (정치적)사안이 자신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생각이 깔려 있다. 진보나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 제공에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어제치 한겨레를 보니 종합면 14개 기사 중에 5개를 빼고 모두 정치기사였다. 다른 신문을 비교해보니 그렇게 정치기사에 매몰되진 않았다. 중장기적으로 한겨레 탐사기획을 준비·보충해서 시점과 관계없이 내보낸다면 독자들의 그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재권 탐사기획이 부족하고 최근 정치기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인데 외부 열린편집위원 모두 각자 몸담고 있는 공간과 삶의 궤적에서 신문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물론 새겨들을 말이지만, 관점과 방향이 이 회의 공간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물론 저희는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여러 마리 토끼를 잡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를 확장하면 1만명, 2만명, 10만명이 천가지의 생각을 갖고 한겨레를 보겠구나 생각한다. 질문했던 것들은 한겨레 편집국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겨레 독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불만이 가장 높은 것도 정치다. 애정이 많기 때문에 비판도 많고 주문도 많다고 여긴다. 요즘 세상의 독자 니즈(요구)를 좇으려면 정치라는 영역을 무시하긴 어렵다. 반면에 그만큼 잘 만들지 못하면 큰 실망을 줄 수 있겠구나싶다. 최근 며칠은 남북관계나 한반도 문제가 빅이슈였고, 한미정상회담 등이 있어서 정치 관련 내용이 많지 않았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편집자 입장에서 보면 한겨레가 탈정치화의 길을 비교적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만큼 정치 기사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탈정치를 가속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김영배(구청장)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는 공익과 공공성 회복이다. 생활정치에 대해 주목하는 게 좋겠다. 단적인 예가 진주의료원 이슈다. 독자들이 진주의료원 사태에 주목하는 건 시민들이 그런 공공성 문제에 목말라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신문에는 진주의료원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 위주로 나오니까 공감하기 좀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든다. 백필규 정치도 중요하지만 한겨레가 앞으로 다룰 화두 중 하나가 정보공개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불투명성이나 도덕적 해이 등은 정보공개가 되지 않는 것과 관련돼 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예산이 정책이란 이름 아래 투입되고 있다. 대기업은 악, 중소기업은 선으로 한겨레가 논조를 펴는 경우가 있는데, 대기업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듯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이 잘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책도 묻지마식 지원이 많은데 기업에 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다. 정보 축적과 공개, 활용이 중요하다. 이것을 한겨레가 집중적으로 다뤄주면 좋겠다. 이태호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참여연대 내부적으로 얘기를 나눠보니 진보적 언론에 기대하는 게 주로 ‘와치독’(감시) 기능이었다. 한겨레가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도 집요하게 권력 감시 기능을 해야 한다. 한겨레가 그동안 그런 역할을 해왔으나 잘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그냥 권력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제시하면서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 탐사보도이기도 할테고, 딸깍발이의 감시 역할이 중요하다. 진영화에 겁낼 필요는 없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때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다만 정치면을 보면 정치적으로 협소한 문제에 대해 정치공학적으로 진영화된 포지션을 강하게 취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과 젊은층 등 독자의 요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인기있는 이야기는 주로 정파적이고 휘발적인 경우가 많다. 가장 휘발성이 높은 게 정치공학적 쟁점이다. 한겨레가 온라인 정서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 감시라는 측면에서 급진적 자세를 취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내부위원 답변 탐사보도 갈증 큰 현장기자는
출입처 배치 빼주기도 창간정신과 진보가치 조화 추구
포털과 다른 차별성 보여주겠다
약자 편들땐 더 정파적이어야
노동현장 르포작가 위촉 어떤가
역사의식 잇는 연재물도 필요 ■ 비정규직 보도와 한겨레 김영희 제가 최근 몇 달간 편집국 편집회의에 참여하면서 고민한 게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기사 발제가 나오면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한겨레가 노동 이야기를 많이 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이 없고 그래야 한다고 하는데, 철탑농성 노동자 이야기를 좀더 공감하는 방식으로 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농성을 계속 중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도 든다. 기사량을 많이 다루기보다는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않나 생각이 든다. 이남신 비정규직이 의제로 떠오르는 것 자체는 좋다. 그런데 지금 정리해고·비정규직 투쟁하는 쪽은 어찌보면 먹고 살만한 곳이다. 정리해고 투쟁은 연봉 높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에서, 비정규 투쟁하는 곳도 공공부문이나 사내하청처럼 비정규직 내 중상위 이상 계층이다. 딜레마가 있다. 미조직, 실업자 등은 조직노동에서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일간지 중 이런 고민을 가지고 노동 일상을 보도할 언론매체가 별로 없다. 그런데 한겨레 지면을 보면 보통 사회면에 노동이 들어가 있거나 복지와 묶여 있다. 노동 지면을 따로 마련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핵심문제가 노동 문제의 심각성,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인데 이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기사가 필요하다. <한겨레21> 기자들이 불법 단기파견 일자리에 직접 위장 취업해 보도해 반향이 컸는데 그런 것들이 한겨레의 강점이다. 우리사회의 선차적 과제를 기사로 담아내는 강단과 실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인력과 예산 투입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 가장 하층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한겨레의 가치 중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은 진전이 있었으나 민생 쪽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이태호 낮은 출산률로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어 앞으로 이주 노동이 많아질 것이다. 참여연대에 대해 예전에는 진보 쪽에서 왜 ‘민중’ 개념을 안 쓰냐고 비판했는데, 요즘엔 ‘시민’이란 말을 쓰지 말라는 애기도 나온다. 이주노동자 증가로 시민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사회의 반반이 될 수 있는데 앞으로 어쩔거냐는 얘기다. 이주노동을 신문에서 소수자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말고 경계를 더 넓혀 공동체성을 찾는 게 필요하다. 후지이 다케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한겨레가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오늘치 한겨레 1면 기사에서 강제추방 이주 여성을 다루기도 했다. 다만 글로벌도 상층 글로벌이 있고, 하층 글로벌이 있는데 하층 글로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만이 글로벌한 건 아니다. 덧붙여, 제가 앞서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 틀을 깨야 한다고 말했는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겨레가 ‘평화’를 강조해야 한다. 한겨레는 자주 안보 부실이라고 정부를 비판한다. 그런 기사를 보면 철저한 위기 관리 능력을 가진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안보를 중시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지향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들은 군사력과 다른 차원에서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겨레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기사로 다뤄오지 않았는가? 안보라는 게 어려운 문제이긴 하나 한겨레가 근본적인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아가,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국민’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나 조선족 등 외부인의 시각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남신 노동문제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쌍끌이하는데 한겨레에서 노동이 점점 실종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겨레가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사실보도에 입각해야 하되 한겨레가 더 정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더 초심을 회복해서, 못나고 다수이지만 시민권조차 박탈된 계층을 대변하는데 더욱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덧붙여,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학교비정규직 기사는 논란이 컸다. 팩트에 기반해 노동운동과 조직운동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겠다. 노동에 대해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했다면, 보도가 갖는 파장을 고려했다면 그렇게 기사가 안 나왔을 것같다.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담당을 전문기자 방식으로 보장해주면 좋겠다. 각종 정보는 카카오톡이나 에스엔에스에서 계속 날아온다. 일간지에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 한겨레의 정체성과 공감 신인령 노동전문기자 문제는, 사람을 충원하는데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외부에서 객원으로 르포작가 등을 위촉해 현장에서 오랫동안 체험·관찰해서 깊이 있는 기사를 쓰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겠다. 어떤 작가가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오랫동안 같이 동거하면서 쓴 책을 봤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수많은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려면 전문 인원이 많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직 문 안 닫고 한겨레가 지속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비용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프리랜서를 두고 운용하면 기쁜 마음으로 응할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신민영 몇 분이 비정규직 이야기가 한겨레에 많이 나와서 기쁘다고 하는데 이러면 한겨레의 외연확대는 좀 멀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신문이 너무 로컬(국내보도) 위주가 아닌가 싶다.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있는데, 국제면이 적냐 크냐가 아니라 정치기사든 경제기사든 시각을 글로벌화하는 게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이 중요한데 그것의 많은 부분이 바깥에서 결정되고 있다. 한겨레를 보면 상대적으로 로컬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글로벌 시각이라는 게 꼭 돈과 인력 투입을 더 해야 확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편집회의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다. 1면 톱기사도 국제나 문화 기사를 자주 배치하면 어떨까싶다. 사회경제적 모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제 쪽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 백필규 한겨레의 진로를 고민할 때 정체성을 지키는 문제와 부수를 확장하고 매출을 늘리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균형을 잡는 시선이 필요하다. 한겨레가 지금까지 약자 대변하는 역할 위주로 해왔는데 새로운 대안 제시는 미흡했다. 대안 제시를 위한 소통에서 정보공개가 중요하다. 예컨대 실업문제 해결 통로는 창업 밖에 없다. 창업의 한 부분으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이 중요하다. 미래에는 20대 청년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에서 학생운동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다 스펙에만 몰려서 그렇지 제약조건만 풀어주면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한 제약이 뭔지 정보를 파악해서 한겨레에서 기획보도를 해주면 젊은층의 관심도 많이 끌고 매출 확장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신인령 탐사보도도 중요하지만 한겨레만이 할 수 있는 연재 기획를 늘려주면 좋겠다.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연재물이 필요하다. 신문은 기록이다. 지난번 한완상 선생이 왜 남북문제 개선을 못했는가와 관련해 살아 있는 사람의 실명을 생생하게 거론했는데, 저는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신문에 역사의식이나 창간 정신을 담아내는 어떤 꼭지를 상설코너로 만들어 한겨레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꾸준히 인식시키는 게 필요하다. 다른 지면은 유연화하고 여러 흥미롭고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더라도, 또 진영논리라는 비판을 듣게 되더라도 그런 꼭지를 만들어 창간 당시 송건호·김금수 선생 등에 이어 지금 세대 기자들이 쓰고, 또 앞으로 후속세대들이 이어서 이 꼭지를 쓰면서 정체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조계완 지금 회의에서 어떤 쪽은 한겨레의 정체성 강화를, 다른 쪽은 공감과 외연 확대를 주로 얘기하고 있는 것같다. 한겨레의 가치를 진보에 둘 것인지 언론상품으로서의 가치에 비중을 둘 것인지에 대한 논란 같다. 언론시장의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한겨레 기존 독자도 잠재적 독자도 사회·정치·문화에 대한 태도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진보 가치를 표방하는 언론도 증가하고, 한겨레만이 용감하게 보도하고 감시·폭로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줄어 든 건 사실이다. 이런 변화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창간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고, 진보적 가치와 언론상품의 가치를 동시에 조화롭게 추구할 필요가 있겠다. 이와 관련해 신문 기사를 심의하다보면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이 아쉬울 때가 제법 보인다. 또, 설득력 있는 다각도의 분석이 좀 미흡한 것같다. 동네 골목상권이나 동네 카센터 문제 또는 ’갑을 사회’ 기사 등에서 위계와 불평등 구조 외에 소비자들의 선호와 선택, 후생이라는 측면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짚어주면 좀더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 ‘중년’ 이미지, 가르치려드는 신문? 윤고은 제가 30대 중반인데 저희 세대가 볼 때 한겨레신문은 진보언론 중에서 ‘중년’이란 이미지가 있다. 이는 25년 역사의 성과이면서 동시에 한계이다. 그에 비해 젊고 유연한 느낌이 드는 진보언론도 있다. 인터넷 쪽 진보언론에 견줘보면 중년의 한겨레 이미지는 안정되고 신뢰성있긴 하지만 약간 몸을 사리는 느낌이 있다. 인터넷 언론에 비해 속도에서 밀리는 뒷북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갑과 을’ 불평등 문제를 보도할 경우 좀 늦게 다루더라도 섹션을 따로 빼서 읽을 수 있는, 이 문제를 온통 되짚어보는 지면을 구성해보면 어떨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지 않아도 그것만 따로 떼서 관련 서적이나 백과사전을 보듯 할 수 있는 그런 섹션을 일주일에 한번 씩이라도 만들면 어떨까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단골 가게도 폐업하고, ’한겨레 인’ 코너도 없어지더라.(웃음) 제정임 한겨레가 비정규직 문제를 기사로 많이 다루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 즉 양의 문제, 우리가 제일 크게 다뤘다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 한겨레에 대한 인상비평을 물어보면 ‘386 아저씨들이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호의를 가진 친구들인데 한겨레에 실리는 지속가능경제 포럼 기사의 경우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 포기했다고 한다. 어떤 기사는 정말 다정다감한데 어떤 건 굉장히 중요한 기사이고 의제임에도 상투적이고 딱딱하다. 여성 일자리 문제를 다룬 기사라고 할 때 어느 대학의 같은 과 사람들을 추적해서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는다. 어려운 문제를 친절하게 쓰는 건 힘들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쉽고 친절하게 써주고, 같은 이슈라도 현장에서 직접 취업을 해봤는데 어떻더라고 하면 더 흥미롭다. 갑을문제 섹션으로 만들어볼 만
‘중년 아저씨’ 이미지 벗고
30대 여성성 편집·제작 접목을 이태호 저희 참여연대를 보면 40~50대 남성이 회원의 대다수다. 20~30대가 적고 여성 비율이 낮다. 그런데 요즘 사회적인 문제 제기를 편향없이 받아들이는 건 30대 여성인 듯하다. 20대는 트랜드가 잘 보이지 않는다. 30대 여성은 살면서 맞부닥치는 구조적 문제를 느끼고, 진보적 요구에서도 이념이 아니라 생활적 감수성으로 받아들인다. 희망버스도 쌍용차 사태도 배낭여행도 그렇게 대안적 삶을 가진 이들이 30대 여성이다. 이러한 30대 여성성을 한겨레 지면의 편집제작에 접목해 반영하는 게 진보적인 언론이 수행해야할 사회운동의 미래가 아닐까 한다. 신인령 저는 옛날 사람이라 신문을 지독히 보는데, 습관적으로 스크랩까지 해야 신문을 다 본 것이 된다. 지금 지난 신문이 산더미 같아서 이사갈 때마다 힘들다. 집에서 한겨레랑 중앙일보를 보는데 요새 중앙일보가 각성을 했는지, 한겨레가 유연하려고 하는지 제가 스크랩해놓고 한겨레인지 중앙일보인지 안 써놓으면 둘이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의미에선 너무 색이 다른 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겨레는 초창기에 우리를 감동시켰던, 자랑스러웠던 그 창간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그 때 그 치열한 정신을 생각할 때면 그 시절 송건호 선생을 비롯한 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가. 젊은 세대 기자들도, 체제의 모순은 그 시절과 다르더라도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한겨레에 들어가면 좋다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창간 당시에 좋은 직장 때려치고 기자하던 정신으로 여전히 한겨레를 선택하는지? 한게레가 물론 진보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진보는 낙관적이고 유쾌해야 한다. 보면 가슴이 애어지면서도 뭔가 유쾌하고 신나는 신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찬수 오늘은 첫 회의이고 창간 25주년 기념회의라 폭넓게 이야기했다. 다음부터는 한달간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기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좋겠다. 6월13일 2차 회의 때 다시 뵙기로 하자. 정리/정환봉 기자,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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