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기자
문성근은 뜨거운 불덩이였다. 그가 연단에서 주먹을 쥐고 외칠 때 청중은 전율했으며, 한숨지을 땐 눈물지었다. 그의 사자후에는 진실과 혼이 담겼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역전극의 출발점이었던 ‘노무현의 눈물’을 끌어내는가 하면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첫 전당대회에서 정치 신인인 그를 단번에 당 지도부(2위)에 진입시켰던 힘의 원천이다.
문성근은 노사모 회원으로 지원 활동만 했던 2002년과 달리 2012년 대선 때는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 ‘백만 민란-국민의 명령’이라는 야권 통합 운동을 이끈 뒤 2011년 12월 마침내 민주통합당 탄생의 주역 중 한 명이 됐다. 이어 19대 총선 때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산 북·강서을에 도전장을 던졌다.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부산에서부터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원대한 구상에 따른 것이지만, ‘노무현의 정치적 동생’다운 열정에 따른 결단이었다.
총선 뒤 민주당 대표권한대행까지 지낸 그는 지난 주말 “그동안 정치인 문성근을 이끌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짧은 글을 트위터에 남기고 탈당했다. 일부 추측대로 그가 전당대회에 영향을 끼치려고 했는지, 우연히 날짜가 그랬는지는 별로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다만, 그의 탈당을 보면서 ‘정치한다’는 것에 대해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정치인 문성근의 처지를 돌아보면 그의 결정에 이해가 가는 구석이 없지 않다. 국민참여형 온오프 네트워크 정당을 추구해온 그로서는 민주당이 시민 참여를 줄이고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권한을 늘리는 등 오프형 정당을 강화하는 것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꼈을 만하다. 자신을 대선 패배의 5적으로 규정한 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열불이 뻗쳤을 것이다. 게다가 반노를 기치로 내건 비주류의 김한길이 당 대표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친노 핵심인 그로서는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는 심정이 들었을지 모른다.
진퇴가 빠른 이러한 결정들은 심장이 뜨겁고 영혼이 맑은 사람들의 특성이다. 이들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타협을 잘 못한다. 얼마 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진보정의당의 유시민, 민주당을 탈당한 명계남도 비슷하다. 정치권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다퉜다. 남들과 불화를 겪은 뒤 그들이 겪는 내면의 상처는 더 깊다. 결국 정치판을 벗어나 자유인으로 사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정치는 한판에 승부를 짓는 싸움이나 피 흘리는 혁명이 아니다. 우리네 삶의 방향과 내용을 놓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밀고 당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질긴 일상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확 타오르는 마른 장작불보다는 진득이 오래가는 숯불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꿈꾸는 세상도 ‘차차’ 열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발전에 상당히 기여한 김대중, 노무현을 보라. 그들은 숱한 탄압과 질시를 이기고, 오랫동안 소수파의 외로움과 좌절을 견딘 뒤에야 자기 시대를 열었다. 김대중은 무려 36년, 노무현은 14년이 걸렸다.
물론 세월이 흐른다고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저절로 쌓이지는 않는다. 거기에 걸맞은 ‘책임’이 뒤따를 때 믿음이 조금씩 생긴다. 이런 면에서 정치는 기본적으로 열정보다는 책임 경쟁이다. 정치에서 책임성은 복잡하지 않다.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보다는 그가 대표하려는 국민의 마음과 아픔을 먼저 헤아려 행동하는 것이다.
부산 북·강서을 유권자들은 지난 총선 때 서울 사람 문성근에게 45.2%의 지지를 보냈다. 16대 총선 때 부산 사람 노무현에게 준 사랑(35.6%)보다 약 10%포인트 높았다. 문성근이 이들의 깊은 사랑을 무겁게 느꼈더라면.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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