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형님의 어깨 / 김회승

등록 2013-04-14 19:31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은퇴한 형님과 얼마 전 소주잔을 기울였다. 위로의 말로 시작했는데, 끝은 자식들 걱정이었다. 첫째 조카가 전공과 다른 취업 길을 찾으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터였다. 그래도 어렵사리 첫 직장을 잡은 것을 위안하며 대견해했다.

50대 끝줄에 들어선 형님은 새도시 30평대 아파트에 산다. 경제적으로 크게 쪼들리지 않고 자족하며 사는 중산층 베이비붐 세대다. 나 역시 형님 바로 뒷줄에 서 있기에,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심경은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다.

50~60대는 산업화·민주화 1세대다. 그들끼리 늘 ‘낀 세대’라고 한탄한다. 자의 반 타의 반 부모 부양 의무를 짊어졌지만, 자식들은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게 요지다. 부모에 치이고 자식에 눌려 산다는데, 정말 그들의 삶은 그렇게 우울한 걸까?

우리 사회 베이비부머들은 주거비와 교육비에 목을 맨 채 살아왔다. 1980~90년대 건설 부흥기에 마련한 아파트 한 채에 전체 자산의 80%가 묶여 있는 이들에게, 집값 하락은 단순한 금전 손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여년 지속된 ‘집값 거품’은, 이들이 자산 효과에 기대 꾸준히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을 제공했고, 그 주된 소비처는 바로 사교육 시장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주변에서 자식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하는 쿨한 부모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연봉이 나와 비슷한 수준임에도 자식들을 미국·영국으로,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필리핀·말레이시아로 연수 보냈다는 이야기를 더 자주 들었다. 노후 자금을 깨서 과외를 시켰든, 과외 시키느라 노후 준비가 소홀했든,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킨지 보고서는 한국의 중산층을 두고 “주택자금 대출 상환 부담과 전세계 어느 국가보다 높은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55%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은퇴 세대들에게 집 한 채는 유일한 노후 대책이다. ‘집 팔아도 돈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엔 늘 자리잡고 있다. 최대 소비군의 살림살이가 쪼들리는 건 나라 경제의 선순환에도 큰 걸림돌이다. 경제 정책의 최대 수혜층은 언제부턴가 서서히 은퇴 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로선 어떻게든 집값을 떠받칠 수밖에 없다. 다주택자나 건설업자를 위한 게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중산층이 깨진다.” 이명박 정부 때 경제 관료를 지낸 지인의 말이다. 그는 이달 초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의 최대 효과도 “자산 가치 하락을 염려하는 ‘50~60대 1가구 1주택자’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조만간 정년 연장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50대 중·후반에 은퇴하지만 연금 지급 시기는 최소 65살 이상부터다. 10여년을 소득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재취업이건 창업이건, 은퇴자들의 인생 2모작이 시원치 않으면, 언제든 정년 연장론은 힘을 얻을 것이다. 노령연금뿐 아니라 적자에 허덕이는 공무원·군인 연금도 언젠가 국민연금에 숟가락을 얹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하물며 이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할 강심장 정부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20조원 남짓 마련할 추경 예산 재원을 모두 국채로 조달하기로 했다. 현 세대의 부담은 한 푼도 늘리지 않고,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수십 조원의 빚을 내는 참 편한 방식을 택한 것이다.

부모 세대가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면 세대 갈등은 불가피하다. 지난 대선 때 그런 조짐을 우리 사회는 똑똑히 봤다. 은퇴한 형님의 걱정도 비슷하다. “그래도 우리는 가난했던 부모 세대보다는 잘살았는데, 내 자식들이 나보다 더 잘살 것 같지는 않다”는 거다. 쪽수도 가장 많은데 권력까지 쥐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의 어깨가 무겁다.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4할 타자’ 류현진에 매팅리 “진정한 메이저리거” 극찬
아! 김응용…한화 13연패 ‘굴욕’
낸시랭, 박정희 대통령 볼에 뽀뽀 ~ 앙
진중권, 민주당 원색비난…“문재인 빼면 쓰레기더미”
아사다 마오, 내년 소치 올림픽 뒤 은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1.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2.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3.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4.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5.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