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기자
최근 한반도의 대치 상황을 보면서 50여년 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떠올랐다. 내용이나 환경은 다르지만, 위기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리더십 발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턱밑에 자리잡은 쿠바에 1959년 카스트로의 공산정권이 들어선 것은 미국에 엄청난 위기였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북한 핵문제만큼이나 심각했다.
선거 때 강경대응을 약속했던 케네디는 집권 초부터 중앙정보국(CIA) 등으로부터 즉각적인 행동 개시를 하라는 재촉을 받았다. 결국 그는 취임한 지 석달도 안 된 1961년 4월 쿠바 침공을 승인했다. 그러나 쿠바 망명자로 구성된 침략자들의 피그스만 상륙은 사흘 만에 100여명이 죽고 1000여명이 생포되는 걸로 끝났다. 케네디 정부는 나중에 생존자들의 몸값까지 지급해야 했다. 케네디 말처럼 “만약 의원내각제였다면 사임했어야 했”던 실패였다.
하지만 1년여 뒤인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을 때 케네디는 진화했다. 그는 강경파에 휘둘리기보다는 위기 국면에서도 상황을 적절하게 통제했다. 미사일 기지를 당장 폭격해서 화근을 없애자는 군과 정보기관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그는 후일 측근에게 “만약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들이 잘못됐다고 살아서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당시 소련의 핵무기가 이미 쿠바에 배치돼 있었다. 대신 케네디는 소련 미사일 반입을 막기 위해 쿠바 해안에 대한 봉쇄조처를 택했다. 번 시간 동안 흐루쇼프와의 막후 협상으로 위기를 해소했다.
1차 위기 때 그는 군이나 정보기관 종사자 등 이른바 ‘전문가’들을 전적으로 믿었다. 아이젠하워 정권 때부터 비밀작전을 준비해왔던 중앙정보국장 덜레스의 전문성, 작전 지휘자였던 리처드 비셀의 명성과 능력에 기댔다. 케네디는 최종 결정의 근거로 삼았던 합동참모본부의 작전 평가보고서와 국가안보보좌관의 자문 내용이 엉터리일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이런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그는 2차 위기 때는 백악관에 상황실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ExCom)를 설치해 상황을 자신이 통제했다. 엑스콤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뿐 아니라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등 정치적 판단을 할 군사 문외한들도 참가하게 했다. 엑스콤의 토론이 치열할수록 케네디는 전체 상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최적의 대책을 마련했다.
북한 핵 위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은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신중하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화해정책의 일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상황을 확실하게 장악해서 관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도발이 발생한다면 일체 다른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고 초반에 강력 대응하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데서 보듯이 군사조처에 대한 판단을 군에 위임한 듯하다. 안보팀을 군 출신 일색으로 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용기백배한 군은 “개성공단 인질 사태가 벌어지면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구출하겠다”고 떠들고 있다. 그게 바로 전쟁인데도 할리우드 영화 얘기하듯 한다.
국가 안위에 관한 사안은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게 재량권을 주면 안 된다. 특히 집단사고 경향이 강한 군은 더 위험하다. 대통령으로서 군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방임은 자칫 재앙이 될 수 있다. 항상 ‘정치적 고려’를 충분히 한 뒤에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케네디가 남긴 교훈이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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