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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대통령의 ‘사과 회피’ / 박창식

등록 2013-04-04 19:09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권위주의 통치자는 흔히 자신이 무오류의 존재임을 주장한다. 국정에 결함이 생겨도 결코 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치의 동력인 절대적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과거 교황의 무오류설, 왕권신수설에 터잡은 유럽 절대왕정, 동양의 많은 군주들이 그렇게 했다. 반면에 민주정치에서는 최고 지도자라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기본이다. 사과를 회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과를 잘하면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교정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과를 잘해 점수를 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8년 5월 크라이슬러 공장에서 한 여기자의 질문을 받고 “스위티”(자기, 연인 정도의 뜻)라고 불렀다가 입길에 올랐다. 그는 곧바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지 않자 음성메시지에 “나의 나쁜 버릇 가운데 하나였다”며 구체적으로 사과했다. 경찰관이 한 흑인 하버드대 교수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체포했을 때 오바마는 “경찰의 멍청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가 문제가 되자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오바마는 교수와 경찰관을 함께 백악관으로 불러 맥주를 마시며 사과의 ‘절차’까지 갖춤으로써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신의학자인 에런 라자르는 “사과는 더 이상 약자나 패자가 늘어놓는 변명이 아니라 ‘지도자의 언어’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사과 솔루션>) 그는 공적 사과의 모범 사례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노예제도 사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대인 학살 침묵과 반유대주의 사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의 2차 세계대전 만행 사죄를 꼽는다. 특히 노예제도 사과는 잘못의 진솔한 인정, 진정한 후회, 잘못의 자세한 배경 해명, 피해 보상의 네 가지 절차를 모두 갖춘 사과의 전범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비교적 망설임 없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는 1991년 5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진압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국민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일각에선 ‘물태우’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가 민주화 이행기에 걸맞게 국민과 소통하려 노력한 건 사실이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점차 일반화된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국정 실책, 측근 비리가 불거지면 사과 성명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사과를 많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제를 드러내놓고 국민과 소통해 해법을 찾는다는 탈권위주의 지도력을 선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 넘실거리는 ‘촛불 바다’를 보고 “뼈저린 반성”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 뒤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펼쳐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인의 사과는 ‘언어적 수사를 동원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불신풍토를 부채질하고 말았다.

청와대가 엊그제 새 정부 요직 인선 실패를 어설프게 사과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책임자로서 직접 사과하지 않고, 비서실장 명의의 사과문을 그것도 대변인한테 읽도록 시킴으로써 사과를 회피한 처사는 당연히 잘못이다.

더욱 딱한 것은 대통령의 행태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과거의 대통령들은 국민총화와 단결, 통합을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대통령의 오류는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권위를 절대화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했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대통령의 사과는 거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의 소통방식을 벗어난다면 지도력을 좀더 발휘할 터인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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