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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어느 ‘낙하산’의 넋두리 / 김영배

등록 2013-03-31 19:17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그래, 나 낙하산 맞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지. 엠비(MB) 정부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었으니 ‘엠비맨’으로 분류되는 것도 어쩔 수 없고.

돌이켜보면 참 허망한 5년이었어. 이젠 보따리 쌀 때가 된 것 같아.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기관의 관할 부처 수장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 운운하며 기관장 교체를 거론하고 나선 판에 눈치 없이 임기를 다 채우려다가는 봉변당하기 십상이지.

어쩌면 5년 전 상황의 반복이고 한편으론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들어. 엠비 정부 초기의 낙하산 내리꽂기는 내가 봐도 정도가 좀 심했어. 엠비 측근으로 일컬어지던 인사를 제치고 기관장에 선임된 인사를 내쫓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이뤄지고, 임기 만료를 한 달쯤 남겨두고 중도 퇴임을 강요당한 예도 있었으니. 낙하산을 투입할 땐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선 좀 기다려줄 법도 했는데…. 무지막지한 그 교체 작업이 5년 뒤에 비슷한 홍역을 치르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놓은 거지, 뭐.

나보다 이전에 이미 눈치 빠르게 보따리를 싼 사람들이 몇 있었고, 또 앞으로 그 보따리 행렬이 이어질 테지. 임기 전 기관장들의 무더기 퇴임이, 5년 뒤 다시 그 사태를 불러오는 악순환의 무한궤도에 박근혜 정부도 올라탄 거야.

참 어려운 문제인 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의 임기를 그대로 다 보장해줘야 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 해당 분야에 대한 식견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일한 인연만을 무기로 자리를 꿰차 지금껏 깔고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단 말이야. 그런 사람의 임기까지 온전히 지켜주자는 건 도리에 맞지 않겠지. 5년 내내 이 기관 저 기관 옮겨다니며 주머니를 불린 치들도 꽤 있어. 엠비 정부의 임기 만료를 불과 몇 달 앞둔 지난 연말께 염치없이 임기를 연장한 낙하산들도 여럿 있어. 이 동네에선 그것도 일종의 ‘알박기’라고 한다네. 낙하산 알박기, 하하.

임기를 온전히 마치게 하든 않든 임명권자로서는 욕을 들을 수밖에 없는 셈이야. 그렇다면 임명권자 처지에서야 기왕이면 선거 때 도와준 이들을 챙겨주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겠지. 대통령제 아래에서 정당의 정책 기능이 온당하게 자리잡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정당의 울타리 밖으로부터 수많은 유무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실정 아니냐고. 그게 바뀌지 않고는 5년마다 이렇게 북새통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은 거지.

이런 생각은 들어. 같은 공공기관이라 해도 그룹별로 좀 분리해서 보자는. 공공기관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어도 정부 지분율이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0%인 경우도 있거든. 그 구분 없이 모두 대통령의 인사권 대상으로 삼는 게 온당한 걸까? 더욱이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공공기관은 295곳이나 돼. 대통령이 그 많은 기관의 사정을 어찌 다 알고 인사를 하겠느냔 말이야. 해당 기관의 규모와 성격으로 보아 대통령의 품격에도 맞지 않는 일이지.

불완전한 민영화로 민간기업이면서도 사실상 공기업처럼 인사가 이뤄지는 것은 더 문제이고. 어설픈 민영화 탓에 ‘돌멩이 주주’ 없이 ‘모래알 주주’로만 이뤄져 있는 경우 필경 외압에 휘둘리고 결국 피해는 국민들한테 돌아오지. 이런 곳까지 포함한 공적 영역의 기업 경영진을 어떻게 뽑고, 어떻게 관리하며, 어떻게 교체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논의를 할 때가 된 것 같아. 재벌 지배구조만 문제인 게 아니란 것이지. 골치깨나 아픈 주제지만, 피해갈 수도 없는 과제 아닐까. 나는 이제 그만 가네. 잘들 해보게나.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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