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비겁하거나 어리석거나

등록 2013-03-27 19:27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무서웠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다. 그가 22일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눈을 부라렸다.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의 신상발언 직후였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소수 극렬 집단에 불과했지만 의석을 차지한 뒤 대중의 불만을 조장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우리 국회 안에 김정은과 북한을 공공연히 두둔하고 있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통합진보당입니다.”

그랬다. 1970년대 반공연사들이 그런 확신과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북한 공산당과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용공단체가 조국 근대화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무서웠다. 본회의가 끝난 뒤 김태흠 의원을 포함해 여야 의원 30명이 ‘국회의원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을 제출했다.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보도자료를 낸 것은 잠시 뒤였다.

“아무리 미워도 이건 아니다. 두 의원의 사상과 정책 노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마녀사냥식 사상 검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면 경찰과 검찰이 나서서 단죄할 일이다.”

그러나 사상 공세는 이어졌다.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기현 의원은 25일 자격심사와 별개라면서도 “태극기를 국기로 인정 못 하거나 이런 것은 국민들의 상식과 너무 어긋나는 것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강한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악을 쓰고 나왔다. 자격심사안 청구 의원 30명을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윤리특위에 김태흠 의원 징계를 요구했다.

느닷없이 민주통합당이 나섰다. 윤리특위 자격심사소위원장 박범계 의원은 26일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본인들이 억울하다면 자격심사 절차를 통해 시빗거리를 풀어낼 수 있는 과정으로 인식해 달라. 오히려 부정경선 논란을 종결지을 기회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며 ‘무죄라면 재판에서 입증할 기회를 주기 위해 기소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궤변이다.

이번 사건은 사실 단순하다. 지난해 6월 등원협상에서 여야가 두 의원 자격심사안 제출에 합의했을 때는 그래도 일리가 좀 있었다. 경선 부정이 한창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검찰의 수사는 11월에 마무리됐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심사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자격심사안을 제출했다. 명백한 강자들의 횡포다.

도대체 왜 그럴까? 새누리당은 보수다. 전두환 민정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색깔론과 적대적 공존의 본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종북을 자꾸 공격해야 자기 밥그릇이 커진다.

민주통합당은 왜 그럴까? 몇 사람에게 물었다. 두 가지 의견이었다. 첫째, 새누리당이 워낙 강하게 요구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둘째, 종북이 아니라 경선 부정으로 인한 자격심사니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가? ‘어쩔 수 없다’면 비겁한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건의 출발은 경선 부정이었지만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이 종북 논란으로 변질시켰다. 일부 진보 성향 논객들도 덩달아 거들었다. 지금은 어느 것이 본질인지 불투명해졌다. 이제 와서 이 사건이 순수하게 경선 부정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민주당의 태도는 정치적 계산도 잘 안 맞는다.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진 원인 중에 ‘진보정치의 몰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2000년대 들어 계층성을 거의 상실했다. 민주당은 노동자·농민·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물러난 공간을 진보정당이 채워 나갔다. 그런데 총선 뒤 갑자기 경선 부정과 종북 논란으로 진보정당이 분열하며 무너졌다. 계층에 기반한 현장 조직도 무너졌다. 지금 민주당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누리당 장단에 놀아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문제가 많다. 그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거대 정당들이 자신들이 싫어하는 국회의원을 두들겨패서 쫓아내겠다는 식의 발상은 곤란하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맨날 말썽만 피우더니…” 새누리당도 김재철 MBC 사장 해임 반겨
‘철근 부실시공’ 청라 푸르지오 고발하기로
어맨다 녹스 ‘섹스스릴러’ 또 한번의 반전?
대선 여론조작 댓글 국정원 직원 더 있다
미 동성애자 권익투쟁 반세기…승리의 서막이 열린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대로면 식물 대통령, 자진사퇴, 탄핵뿐이다 1.

이대로면 식물 대통령, 자진사퇴, 탄핵뿐이다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 하지만 헤어질 수 없다 2.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 하지만 헤어질 수 없다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3.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사설]“김영선 해줘라” 윤 대통령 육성, 수사로 밝혀야 4.

[사설]“김영선 해줘라” 윤 대통령 육성, 수사로 밝혀야

윤-한 회동, ‘두 검사’의 잘못된 만남 [아침햇발] 5.

윤-한 회동, ‘두 검사’의 잘못된 만남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