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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라 차스코나 / 백기철

등록 2013-02-12 19:14

칠레의 대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산티아고에 있는 자신의 집 이름을 ‘라 차스코나’라고 불렀다. ‘헝클어진 머리’라는 뜻인데, 세 번째로 맞이한 아내 마틸데의 머리 모양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이 집은 저항시인이자 낭만시인이기도 한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집은 한 척의 배 내부처럼 꾸며졌다. 마치 배의 선실에 와 있는 듯하다. 유리창도 선실처럼 동그랗게 만들었고, 식탁도 선실처럼 길고 좁다. 벽은 선실의 느낌이 나도록 유선형으로 꾸며진 곳도 있다. 생전에 바다를 무척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의 보헤미안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네루다는 인생은 항해와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배처럼 꾸며진 집에 몸을 싣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어디론가 인생 항해를 떠나곤 했으리라.

네루다의 삶은 사랑과 낭만 못지않게 혁명과 슬픔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바르셀로나 영사로 있으면서 파시스트의 잔악함을 목격했다. 그 후 귀국해 칠레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시인이자 혁명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73년 피노체트가 주도한 쿠데타로 평생의 동지였던 아옌데 대통령이 숨지고 열흘이 지난 뒤 암 투병 중이던 그도 생을 마감했다. 젊은 시절 대표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처럼 절망의 노래를 남긴 채 숨져갔다.

쿠데타 직후 숨진 네루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오랜 세월 끊이지 않았다. 네루다가 비록 암 투병 중이었지만 직접 사인은 군부에 의한 독살이란 의혹이 그것이다. 칠레 공산당의 조사 요청을 받은 법원은 최근 그의 주검을 발굴해 부검을 하도록 명령했다. 산티아고 남쪽 해변도시 이슬라네그라에 묻힌 네루다가 40년 만에 다시 역사 앞에 서는 것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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