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 사회부 교육팀장
아침햇발
기자는 주말 저녁 홍어에 소주 한 잔 하며 스포츠 중계나 역사다큐멘터리를 볼 때 행복감을 느끼는 축이다. 홍어를 처음 맛본 것은 27~28살 무렵. 처음 홍어를 먹고는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싶어 젓가락이 가지질 않았는데, 묘하게도 그게 홍어에 빠진 단초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홍어는 비싸고 귀한데다, 이미지도 호남 특히 목포사람들의 향토음식에 국한돼 있었던 것 같다.
최근 휴가 반 취재 반으로 지인들과 경상북도 문경시를 찾은 적이 있는데 뜻밖에 그곳에서 홍어를 먹게 되었다. 점촌읍의 한정식집에서 홍어삼합이 저녁식사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이다. 낙동강이 발원하는 경상도 북부 깊숙한 소읍에서 홍어를 먹게 되다니. 뜻밖의 장소에서 가까운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에 덩달아 술맛까지 달았다. 물론 본고장의 맛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길 따라 사람 따라 퍼진 입맛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지역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최근 들어 가장 대중화된 음식의 하나를 꼽으라면 홍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서울에서는 홍어전문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과거에 홍어는 좋아한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목포에서도 큰 잔치가 있을 때 홍어를 얼마나 내놓느냐가 가세를 가늠하는 잣대였다고 한다. 이런 홍어가 좁은 목포항을 나와 광주 찍고 서울 돌아 드디어 문경새재를 넘어갔으니 이제는 홍어맛도 ‘전국화’의 길 위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성 싶다.
홍어가 목포음식에서 한국인의 음식으로 영역을 넓혀가게 된 결정적 시초는 디제이 정권의 등장이었다. 울분을 삭이며, 결의를 다지며 비장(?)하게 먹던 뒷골목의 홍어가 실력자들의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실세들에게 홍어는 정권이 바뀌었음을 은근히 과시하는 상징이었고, 그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홍어먹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냐’며 코를 쥐고 물러서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홍어의 맛에 새로 입문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홍어 맛은 그렇게 정치·경제·문화계의 권력이동에 실려 호남이란 울타리를 넘어가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홍어가 단지 권력자의 음식에 머물렀다면 여전히 한 지방의 음식으로 남았을 것이다. 홍어가 대한민국 서민들의 술상에도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칠레산 홍어의 대량 수입 덕분이었다. 지갑이 얇은 가난한 홍어 애호가들에게 값싸면서 맛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수입산 홍어는 ‘꿩 대신 닭’ 그 이상이었다.
말하자면 홍어에게서 지역주의의 해체는 정권교체라는 민주화와 자유무역 협정이란 글로벌화의 산물인 셈이다. 홍어 애호가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화두로 내세운 대연정론도 어쩌면 홍어에서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대연정이라는 게 기실 고향 따라 식당에 가지 말고 입맛 따라 가자는 게 아닌가.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인들에게는 물타기 수법 쯤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구태의연한 지역주의의 시대적 한계 역시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오직 한 분야, 정치에서만 지역주의를 볼모로 잡고 있을 뿐이다.
해방된 지 60년이 된 오늘의 ‘오! 필승 코리아!’ 세대들에겐 좁아터진 반쪽 나라에서 아등바등대는 대결지향성 지역주의는 더이상 기댈 언덕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홍어맛은 몰라도, 민주화와 글로벌 시대의 바람을 타고 홍어가 걸어간 길 위에 이미 서 있다.
이인우 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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