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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국가동원 시절의 언어관습? / 박창식

등록 2013-01-10 19:12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어떻게 일할지가 궁금한 때다. 무엇보다 박근혜 당선인이 국정 현안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에 많은 사람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언어는 생각을 압축해 담아내는 그릇인 까닭이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은 ‘말다운 말’, 즉 ‘쌍방향 소통’을 피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소감과 포부를 밝히는 기자회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선 다음날인 12월20일 새누리당 기자실을 찾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낭독하긴 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고 곧바로 빠져나갔으니, 그건 전혀 기자회견이라 할 수 없었다.

5년 전 같은 날 이명박 당선인은 서울시청 옆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10년 전 같은 날 노무현 당선인도 내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노 당선인은 그해 12월31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현안으로 떠오른 북한 핵문제 대처 방안을 중심으로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김대중·김영삼·노태우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그렇고, 외국의 사례를 둘러보아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통해 뽑힌 최고지도자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들의 궁금증에 응답하는 게 보편적인 관행인데, 유독 박 당선인만 동떨어진 행보를 하고 있다.

박 당선인도 나름의 메시지는 내놓고 있다. 당선 뒤 첫날 당선 인사를 통해선 ‘화해와 대탕평’을 이야기했다. 12월25일 쪽방촌을 찾은 자리에서 ‘공기업 낙하산 인사 반대’를 말했고, 26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1월7일에는 새 정부의 국정 방향으로 ‘국민안전’과 ‘경제부흥’을 내걸었다. 그러나 당선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쏟아놓을 뿐이지, 국민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듣고 응답하는 자리는 만들지 않고 있다.

박 당선인의 화두에서 좀 의아스러운 어감이 묻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국민안전과 경제부흥은, 박정희 정권의 국정언어인 민족중흥, 총력안보, 국가안녕질서 수호 등을 빼다 박은 느낌이다. 국민안전은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을 4대 악으로 규정하고 뿌리뽑겠다고 한 대선 공약의 연장선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몇가지 중요 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하겠다고 하면 그만일 터인데, 왜 거창하게 ‘법질서와 사회안전’이라는 인수위 분과까지 만들어 붙이는 걸까?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하면 될 일인데, 굳이 ‘잘살아보세 신화’ ‘한강의 기적’을 되살리자며 ‘아버지의 구호’를 부르짖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박정희는 국가 관료기구와 정보, 경찰기구를 총동원해 자원을 집중시키고 반대 목소리를 억압함으로써 국가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고자 했다. 권위주의적 사회통제를 기반으로 한 상시적 국가동원체제가 그 시대의 특징이었다. 동원을 위해선 동원 구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 그리고 박정희 체제 국정언어의 공통점은 동원 구호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혹시 박근혜 당선인이 국가동원체제의 효율성 신화를 신봉하고 향수에 젖어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닐 것으로 믿고 싶다.

지금은 참여와 쌍방향 원리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통 규칙으로 자리잡아가는 시대다. 여성 대통령인 박 당선인이 배려와 공감을 토대로 민주적 지도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본새를 다듬으면 보탬이 될 것 같다. 대국민 기자회견은 수시로 하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지도자가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라는 제도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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