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둘째가 또 조른다. “엄마, 깡남스타일~.”
둘째는 몇달 동안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에 푹 빠져 있다. 스마트폰으로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는 “오빤 깡남스타일~예~”라며 말춤까지 따라 한다. 그렇다. ‘강남스타일’은 30개월 여자아이도 춤추게 한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싸이가 스포츠선수였다면 어땠을까.’
싸이는 과거에 불량했다. 한 번은 대마초 흡연으로 벌금형을 받았고, 또 한 번은 불성실한 군 대체 복무가 들통나 군대를 다시 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수 위기론’이 등장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밑바탕에는 팬들의 용서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싸이 자신조차도 “용서해 준 국민께 감사하다”고 할까.
다시 묻는다. 싸이가 스포츠선수였다면?
싸이는 축구선수로 치면, 두 번의 옐로카드로 퇴장감이다. 이 또한 경기장 안 돌발행동에 한해서다. 경기장 밖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번의 그릇된 행동만으로도 철퇴를 맞을 수 있다. 대중은 그만큼 스포츠선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똑같이 공인 취급을 받지만, 대중은 연예인보다 스포츠선수에게 덜 관대한 것도 사실이다.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은데도 말이다.
프로배구, 프로야구를 휩쓴 승부·경기 조작 사건이 터진 지 1년 가까이 됐다. 당시 사건 연루로 영구 제명된 현역 선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프로배구의 ㅂ선수, ㅇ선수는 입대했다. 상무 소속으로 군인 신분이던 ㄱ선수는 제대해 모교 배구부에서 후배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프로야구 ㅂ선수는 최근까지 스승이 있는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했다. 그의 부모가 했던 가게는 사건의 여파로 문을 닫았다. 사건 연루자들 중에는 사안의 중대성을 모른 채 선배·동료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가담했던 이들도 상당수다.
신성한 스포츠를 검은돈으로 얼룩지게 만든 것은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 규약에도 분명히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밖에 안 해 온 그들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경기장 밖으로 내몬 것은 너무 가혹해 보인다. 그들 대부분은 운동이 아니면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순진한 온정주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픈 손가락을 무조건 잘라내고 상처를 봉합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잘려나간 손가락은 그저 버리면 그뿐일까.
청소년 시절 행한 죄 때문에 한 유망 야구선수는 팬들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그라운드에서 내쫓겼고, 조폭이 됐다. 판사는 “박찬호 같은 선수가 되어 속죄하라”고 했고 그 또한 반성했지만, 대중은 그에게 기회조차 허락지 않았다. 승부조작 여파로 영구 제명되면서 생활고에 몰린 몇몇 축구선수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범죄자가 된 선수도 있다. 이들 외에도 대부분은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 프로배구 감독은 “1년에 한 번 인성교육으로 자기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연맹도 문제고, 밖으로 드러난 선수들만 영구 제명시킨 것 또한 형평에 안 맞는다”고 했다. 한 원로 야구 감독은 “정치인이나 경제인도 ‘특사’(특별사면)라는 것이 있는데, 스포츠도 그런 게 있으면 어떨까 싶다”고 했다. 당장의 용서는 사치다. 하지만 영구제명이 아니라 재발방지 각서를 받고 일정 기간 자격정지에 사회봉사 명령으로 징계를 감해준다면, 그들이 최소한 삶의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프로스포츠 수장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보길 바라본다.
오늘도 난 딸의 말춤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용서의 기적을 본다.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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