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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귀족 민주당, 뻐꾸기 민주당 / 김이택

등록 2013-01-03 19:22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대선이 끝나고 해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멘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선거 때 빨간 점퍼는 봤어도 노란 점퍼는 본 적이 없다. 앞으로 민주당 절대 안 찍는다”는 친구에다 “시민단체 후원도 끊겠다”고 선언한 386 출신 후배도 있다.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민주통합당 게시판에만 들어가 봐도 쉬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의 극단적 선택과 수개표 청원운동은 그런 맥락에서는 동전의 양면이다. 모든 화살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단일화’에 실패한 게 민주당의 주요 패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좀더 크게 보면 정책 경쟁, 특히 ‘경제’ 싸움에서 진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민주 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경제’에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내 임기 중에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토로했고, 노 전 대통령 역시 “복지도…바보처럼 하고 말았다”고 후회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후배들은 대안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는 데 다시 실패했다. 박근혜표 맞춤형 복지와 짝퉁 경제민주화 탓에, 설익은 보편복지와 재벌개혁론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50대 89.9%가 투표장으로 달려가 62.5%가 1번을 찍은 건 지난 10년의 경제 실정 탓도 있을 것이다.

선거 뒤 민주당에서 ‘야당 귀족주의’를 자성하자거나 “1469만표는 민주당 실력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남의 둥지에 알 낳는 뻐꾸기처럼 남의 표에 의존했다는 뜻일 것이다. 인물도 정책도 그랬던 게 사실이다. ‘안철수’에 기대 단일화에만 목을 매느라 선거전략은 내내 갈팡질팡했다. 정책 역시 재벌개혁이건 보편적 복지건 옛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 것을 빌려다 썼을 뿐, 내부의 치열한 논쟁과 고민의 산물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을 말해도 진정성과 치열함이 모자랐고 현장에서 박근혜식 짝퉁과 차별성을 내세우기도 힘들었다.

상처에 소금 뿌리는 말이 될지 몰라도, 민주당, 이대로면 5년 뒤에도 전망이 어둡다. 지지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데 아직도 대선 평가는커녕 비상대책위원장 하나 뽑지 못하고 친노·비노만 따지고 있는 저급한 파벌구도가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사회 각 분야를 보수가 장악하고 있는 터에, 고령화로 유권자 분포도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보수의 아성인 영남의 수적인 절대 우위는 굳건하다.

물론 정치는 상대가 있는지라 승자가 못하면 패자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는 있을 것이다. 대선 뒤 박근혜 당선인의 행보가 불안한 걸 보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첫 인사로 윤창중씨를 발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글에 공감하는 의식수준이라면 앞으로도 줄줄이 ‘사고’가 터질 수 있다. 약속은 꼭 지킨다면서도 문화방송 노조에 한 약속만은 모른 척하는 것도 언론을 통제 대상으로만 봐온 1960~70년대 청와대 시절의 경험 탓일 수 있다. 국민대통합, 민생대통령을 내세우면서도 철탑농성 현장이나 자살노동자 분향소 대신 전방부대를 찾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는 절박한 민생현장은 외면하는 걸 보면 박근혜식 ‘민생’의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가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기회는 다시 야당에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회일 뿐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 만한 비전과 대안 없이는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5년, 이번에도 박원순이냐 안철수냐, 어디 줄 설까만 재고 있다간, 더 이상 민주당이 설 땅은 없을 것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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