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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멘붕과 정신승리 사이 / 백기철

등록 2012-12-25 19:27수정 2012-12-25 21:34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대선이 52 대 48의 구도로 끝나면서 선거 후유증이 만만찮다.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는 낙담하고, 절반이 조금 넘는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형국이다.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50대의 반란은 단순한 보수화라기보다 야권에 대한 불안감의 극적 표출이었고, 야권은 단일화 프레임에 빠져 안정적인 민생정책을 내놓지 못했으며, 야권 내부에서 제대로 된 변화의 모멘텀을 갖지 못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심리학 용어에 ‘투사’(Projection)라는 게 있다. 자신의 어려움을 남 탓으로 돌림으로써 좋지 않은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잘못된 결과를 두고 남 탓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얘기다. 심리학의 ‘행복을 찾는 기술’ 항목엔 ‘남 탓하지 않기’가 있다.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성취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자신을 탓하느냐, 남을 탓하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남 탓을 하는 사람은 변화하기 어렵다.

선거 뒤 2030세대 중에선 박근혜에게 몰표를 던진 노년층을 왜 우리가 부양하느냐며 지하철 무임승차든 국민연금이든 모두 폐지하자는 말이 나온다. 저소득층일수록 박근혜를 많이 찍었다는데 뭐하러 불우이웃을 돕느냐는 볼멘소리도 한다. 이제 나랏일이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얘기는 필요 없고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일만 하겠다는 말들도 한다.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나 싶다.

‘정신승리’란 말이 있다. 싸움에 졌는데도 이겼다고 생각하면서 일종의 자기합리화를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말한다. 사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얻은 1470만표는 적지 않은 표다. 5년 전 대선에서 500만표 차이로 졌고, 이번에 100만표 차가 났으니 5년 후엔 뒤집히지 않을까? 정신승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멘붕에만 빠져 있을 일도 아니다. 멘붕과 정신승리 사이 어딘가에서 차분히 길을 찾아야 한다.

기성세대는 실의에 빠진 2030, 젊은 벗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남 탓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언론을 놓고 보면 자괴감을 떨치기 어렵다. 언론은 박근혜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 박근혜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서 국가 지도자 수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개념 없음’을 드러내기까지 그 실체를 제대로 파헤친 언론이 없었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보도도 계속 내보냈다.

정치권은 어떤가. 친노가 잘한 건 아니지만 비노가 친노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친노가 더 책임이 작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로 탓할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내려놓아야 한다. 스스로 책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크게 내려놓으면 된다. 찬 바람 부는 거리에 나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길거리에서, 현장에서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길은 거기서부터 조금씩 보일지 모른다.

대선 과정의 주요 플레이어였던 안철수 전 교수 역시 미국에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시민사회는 고답적이고 도식적인 역할에 머물면서 국민이 보기에 신선함을 잃은 것 아닌지 살펴야 한다.

역사는 낙담하지 않고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역사는 직선으로, 단시간에 발전하지 않는다. 더디지만 꾸불꾸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2030, 젊은 벗들이 한번의 패배에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역사는 비록 우회하지만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간다는 신념으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 준비하는 사람에게 역사는 언젠가 답을 하기 마련이니까.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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