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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겨울에 고픈 것 / 김양희

등록 2012-12-11 19:26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지난해 이맘때인 것 같다. 한화 이글스와 계약한 박찬호가 연봉 전액(6억원)을 기부하던 날이었다. 평소 친했던 한 야구 선수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너도 기부 좀 해라.” 선수는 발끈했다. “누나! 나도 기부하고 있거든!” 참 머쓱해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 선수’는 1억원을 기부했다. 프로야구 선수 최고 연봉(15억원)을 받기는 하지만 1억원은 누구에게나 큰돈이다.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30)과 주고받은 그날의 카톡 내용을 지면에 옮기면 이렇다.

“효린아빠 멋있다~. 결심 이유가 뭐고?”

“뭐긴 뭐야. 해마다 하던 거 좀 세게 티 내니까 알아주네.”

“작년에 기부 안 한다고 타박한 거 급사과한다.”

“다른 선수들도 조용히 다 하고 있겠지. 한국 사람들은 생색내야 안다니까. 씁쓸하구먼.”

그렇다. 씁쓸하다. 한국 사회는 굳이 생색을 내야만 안다. 그에게 말해줬다. 착한 일은 소문을 많이 내야 한다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한다고.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옛말이다. 기부는 습관이고, 좋은 습관은 두루 알려야만 한다. 해가 갈수록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야구 선수라면 더욱 그렇다. 야구 선수가 솔선수범해야 스포츠 세계에도 나눔의 바이러스가 더욱 퍼져나갈 수 있다.

국내 스포츠 스타들은 기부 문화에 익숙지 않다. 박찬호(야구), 홍명보(축구), 최경주(골프)처럼 재단을 만들거나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거금을 내놓는 김연아(피겨스케이팅)가 있기는 하다. 또한 엘지 트윈스 박용택처럼 어린이 환우와 결연하고 해마다 수술비를 후원하는 선수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들과 연계해서 하는 기부가 전부인 선수들이 많다.

현금이나 현물만이 기부의 전부는 아니다.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처럼 모교 등을 방문해 후배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는 일도 일종의 재능 기부라고 할 수 있다. 프로야구선수협회 등 선수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프로 1명이 아마추어 1명 후원하기’ 등의 행사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일 듯싶다. 유소년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우상’을 만나는 일만큼 더 큰 동기유발은 없기 때문이다.

국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프로야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 선수들은 올해 포스트시즌 배당금 일부(3만4325달러16센트)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3만4325달러16센트는 오클랜드 선수 한 명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이었다. 전미프로풋볼(NFL) 뉴욕 자이언츠는 허리케인 ‘샌디’에 피해를 입은 뉴욕 시민들을 위해 50만달러를 쾌척했다. 일본 최고의 스포츠 인기스타 이시카와 료(골프)는 지난해 벌어들인 투어 상금(20억원 안팎)을 모두 동북부 지진 피해자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태풍 등 뜻밖의 재해가 발생했을 때 선뜻 기부금을 내놓은 스포츠 스타가 있었던가.

스포츠 선수들은 사인회 등에 한 번 참석할 때마다 많게는 500만원까지 손에 쥔다. 보통 사람들의 월봉을 초과하는 액수를 1~2시간 만에 벌어들인다. 각종 시상식에서 선수들은 최고 2000만원의 상금을 챙긴다. 하지만 시상식장에서 “상금을 불우이웃 돕기에 쓰고 싶다”고 밝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는 올해 배당금으로 37억3000만원을 받는다. 오클랜드 선수들처럼 팬들 또한 그들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나눔을 베풀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이 고픈 계절이다. 허한 속을 채우기 위해 각종 만남에서 알코올이 넘쳐난다. 하지만 넘칠수록 좋은 것은 따로 있다. 스포츠 선수들의 넘치는 이웃 사랑을 보고 싶다.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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