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간의 방황과 구원이 소재다. 늙은 파우스트는 젊음과 즐거움, 아름다움을 다시 누리는 대가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넘긴다. <성서>는 예수가 세상으로 나서기 전 광야생활에서 악마로부터 유혹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악마는 세상의 모든 권능과 보화를 거래의 대가로 제시했다. 오늘날 대통령이란 자리는 악마가 영혼을 사들이려 한다면 상대에게 내걸 법한 최고의 권력이다.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도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밝힌 사퇴의 변이 화제다. 기업을 경영하던 시절에도 그는 <영혼이 있는 승부>를 펴내 영혼이 있는 기업을 꿈꾼다고 밝혔다. 종교가 없는 안 전 후보는 삶이 결국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지만, 인간 존엄의 최고가치로 영혼을 언급한다. 정치 혁신을 내걸고 나선 안 전 후보였지만 스스로 영혼의 가치라며 가장 중시한 것은 약속이자 신뢰였다.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뤄내겠다”던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며 경쟁 도중 물러났다.
약속을 절대시하는 것은 의무론적 윤리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보편타당한 윤리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약속은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고 주창했다. 약속 이행이 가져올 결과의 유불리를 떠나서 약속 그 자체로 지켜져야 한다는 칸트의 윤리철학은 결과주의와 반대다. 공리주의, 실용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결과중심주의에서는 약속 파기나 변경이 가져올 이익이 더 크다면 약속 이행은 우선적 가치가 아니다. 정치와 경영은 의무론적 윤리보다 현실적합성과 효율주의가 지배하는 대표적 영역이다. 안철수가 도전한 ‘영혼 있는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구본권 온라인에디터 starry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문재인의 위기, 안철수의 기회
■ “안철수에서 박근혜로 전향한 척하자”
■ MBC와 SBS ‘대선 여론조사’ 결과 다른 이유
■ 안철수 “난 영혼을 팔지 않았다” 속뜻은…
■ 김현철 “아버지 YS, 박근혜 지지 고심중”
■ “한상대 총장이 최태원 4년 구형 직접 지시”
■ 예의 없는 학생, 그들이 내 스승
■ 문재인의 위기, 안철수의 기회
■ “안철수에서 박근혜로 전향한 척하자”
■ MBC와 SBS ‘대선 여론조사’ 결과 다른 이유
■ 안철수 “난 영혼을 팔지 않았다” 속뜻은…
■ 김현철 “아버지 YS, 박근혜 지지 고심중”
■ “한상대 총장이 최태원 4년 구형 직접 지시”
■ 예의 없는 학생, 그들이 내 스승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