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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행복하지 못한 ‘행복위원장’과 국민 행복

등록 2012-11-21 19:24수정 2012-11-21 21:14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보면 가끔 공자가 떠오르곤 했다. 자신을 써줄 제후를 찾아 제·송·위·진·채 나라 등을 주유천하한 공자의 모습과, 노태우 정부를 비롯해 여러 정치세력을 전전한 그의 모습이 묘하게도 겹쳐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를 공자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 나무랄 사람도 많을 테니, 그냥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여기저기 제후들을 찾아다닌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와 비슷하다고 해두자.

김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정치적 둥지를 튼 곳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품이었다. 모처럼 영명한 제후를 만났다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다. 박 후보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자신도 마음껏 포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용의 머리를 그릴 것 같던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그가 주장한 재벌개혁책 등이 대부분 빠진 뱀의 꼬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사냥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가마솥으로 들어가는 사냥개 신세가 됐다.

김종인씨의 새누리당 공식 직함이 ‘행복추진위원장’이라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는 지금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 새누리당은 행복위원장 한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면서 “온 국민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한편의 블랙코미디다.

원래 ‘행복’ 등의 추상적인 단어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일찍이 조지 오웰이 “정치적 언어는 에두른 표현과 막연하고 불분명한 말들로 이뤄진다”고 설파한 바도 있지만, 두루뭉술한 말은 진실을 감추고 호도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행복이라는 실체도 불분명한 말 속에 김 위원장이 추진하고자 했던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사라져 버렸다. 그의 불행은 이미 직함에서부터 예견됐던 셈이다. 더구나 ‘행복’을 무슨 건물 건립이나 행사 개최처럼 ‘추진’의 대상으로 삼는 의식구조 속에서 행복이 꽃피어나는 것은 애초부터 무망한 노릇이었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를 두고 “후보가 되기 전과 된 후가 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목이 바로 김 위원장이 크게 잘못 짚고 있는 지점이다. 박 후보는 결코 변한 것이 아니다. 애초의 모습이 본디 그러했다. 그리고 이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간 것뿐이다.

김 위원장의 불행한 행로는 박 후보를 지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부터 감지됐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 후보의 강점은 재계와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고, 그가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덤비면 우리 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시정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 중 지지기반의 측면에서 재계나 이익집단으로부터 가장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박 후보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후원세력인 기득권층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돌진할 만큼 ‘확실한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김 위원장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제정책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좌클릭한 것을 김 위원장은 위안으로 삼을지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공헌이라고도 여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마저 착각일 수 있다. 박 후보가 보이는 빠른 보수 회귀 속도를 보면 앞으로 어디까지 후퇴할지 아무도 모른다. 박 후보를 에워싸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유권자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금 확인된 것은 박 후보의 냉정한 용인술이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김종인의 난’을 제압해버렸다. 김 위원장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움치고 뛸 수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임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싸늘하게 돌아섰다. 박 후보의 예상대로 김 위원장은 뒷전에서 볼멘소리만 하고 있을 뿐 캠프를 박차고 나갈 용기도 발휘하지 못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공자는 14년간 세상을 떠돌다가 결국 정치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자들의 교육과 역사서 <춘추> 집필에 몰두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자신의 틀린 선택과 좌절의 경위를 자세히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인생의 의미있는 마무리 방법이 아닐까.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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