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경제부장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구절(13장 12절)에서 ‘마태효과’(Matthew effect)라는 용어를 주조해낸 이는 1960년대 말 로버트 머튼이라는 미국의 사회학자였다고 한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따위 같은 맥락의 단순한 표현을 두고 굳이 별도의 키워드를 뽑아낸 것은 위와 아래의 격차가 경제 영역에만 한정돼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정치, 과학, 교육,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두루 관찰됨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던 듯하다. 예컨대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될 뿐 아니라, 저명한 과학자의 업적은 같은 성과에도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인정을 받는다는 식이다.
이미 높은 자리를 차지한 쪽은 더 높이 올라서고 아래쪽은 추락하는 일이 모든 부문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 차이를 점점 벌리고 있음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다. 44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경제민주화가 핵심 쟁점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선거운동을 치르고 있는 주요 캠프에서 쏟아내는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에 지나지 않는다며 냉소하는 시각도 많지만, 그래도 한 가닥 기대감마저 버리고 싶지는 않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줄기로 꼽히는 재벌개혁 부분에서 각 캠프의 공약 사항들이 상당 부분 ‘수렴’되고 있는 것만 해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보수 성향의 정당에서 상대적으로 더 강해 보이는 듯한 개혁안을 내놓는 경우마저 있다. 재벌그룹(대기업집단)에 법적 실체를 부여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하되 책임과 권리를 명문화하자는 대기업집단법 제정안이 한 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부각돼 있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이 주도적으로 제기했던 이 법안을 새누리당 쪽에서 먼저 들고나와 공약집에 포함시킬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주말께 불거졌다. 그 방안을 꺼낸 자체로 개혁적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어도 매우 혁신적인 내용으로 여겨졌던 사안들까지, 새누리당마저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된 우리의 현실적 좌표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운동 와중에 말로야 뭘 못하겠는가라고 지레짐작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선거를 치르기 전에 그 공약사항들의 결실을 볼 수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사항들을 꺼낸 진심을 판단해볼 ‘기회’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정기국회다. 골목상권 보호,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각 캠프 사이에서 교집합을 이룬 사항들은 이번 가을 국회에서 법과 제도로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며 이미 그런 움직임이 있다.
설사 올해 정기국회에서 공약사항들이 법과 제도로 이어가지 못하는 사태 앞에서라도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준비된 실망’을 할 게 아니라 “그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라고 진정성을 판단해보는 실마리로 삼는다면 그 또한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재벌개혁 문제에서만큼은 이제 ‘무엇’을 드러내는 선명성 경쟁보다 이미 내놓은 것들을 ‘어떻게’ 열매맺게 할지에 힘을 쏟을 때가 돼 가는 듯하다.
마태복음의 그 구절을 두고 어느 보수 논객은 예수의 ‘시장주의자 면모’를 보여준다는 매우 독특한 해석을 내렸던데, 부익부 빈익빈을 태평스럽게 방치하는 듯한 예고를 할 예수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앞뒤 구절을 연결해 읽으면 믿음 ‘있는 자’가 돼 신앙의 결실을 넉넉하게 누리라는 비유적 표현이었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결실로 마태효과가 줄어들 것이란 믿음과 기대를 가져본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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