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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렌트푸어’의 작은 소망 / 김영배

등록 2012-10-07 19:16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1년간 해외연수를 마치고 지난해 7월 귀국할 때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났다. 전셋값 때문이었다. 가격이 오른 것도 오른 것이려니와, 도대체 물량이 너무 부족했다. 귀국 몇달 전에 지인에게 부탁해 적당한 물건이 나오면 알아서 전셋집을 결정해 달라고 요청해 놓았건만 그는 쉽사리 선택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값에 견줘 전세 물건의 형편이 마뜩잖았던 것이었다. 차일피일 시일이 미뤄지다가 마지막 구석에 몰려 오래 거래해온 부동산중개인에게 해외 현지에서 전화를 걸어 전세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형편이 그러했으니 가격을 둘러싼 흥정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 동네에 마침 나온 거의 유일한 매물이라니 어쩌겠는가. 최종 결과는 재앙 수준이었다. 낙착된 전셋값은 우리 형편상 최대치 예산으로 잡아놓았던 것보다 3000만~4000만원 높았다. 귀국해서 들어보니, 전세 계약을 둘러싼 소동의 사례는 주위에 매우 흔했다.

은행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른바 ‘하우스푸어’ 대책을 쏟아내는 걸 지켜보면서 헛헛함을 느낀 ‘렌트푸어’들이 꽤나 많았을 것임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해 ‘푸어’해도 ‘하우스’는 있는 사람들에게 왜 지원을 해주느냐는 셋방살이 신세, 렌트푸어들의 항변이 따라나올 수 있겠는데,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도 집 나름이고, 전세도 전세 나름이라는 점만 말하자는 게 아니다. 어울려 사는 사회의 ‘전염성’ 탓에, 투자(집 구입)의 실패(집값 하락과 그에 따른 빚 상환 부담 증가)에 따르는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한다는 교과서 논리만 되뇔 수 없는 사정을 우리는 운명처럼 안고 있다.

예컨대 대출 상환 압박에 못 이긴 하우스푸어들이 싼값에라도 매도 물량을 대거 내놓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그게 거시경제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상의 경로는 당장 현실화하지 않을지라도 아주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피해 범위는 렌트푸어들에게까지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니, 하우스푸어 대책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건 응당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대책의 방식과 내용이 썩 미덥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실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는 게 그 하나다. 어느 선까지 하우스푸어로 봐야 할지, 그 하우스푸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치도 없는 상태다. 한 민간연구기관에서 하우스푸어를 108만명 정도로 추정해놓은 게 반복적으로 인용될 뿐 책임 있는 공적 기관에선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려는 움직임조차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코(자산관리공사) 같은 공공기관을 동원하겠다는 식의 하우스푸어 대책을 내미는 건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한 시중은행이 구체화시킨 하우스푸어 대책 ‘트러스트 앤 리스’(집을 신탁회사에 넘기고 임대료를 내는 방식) 또는 은행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세일 앤 리스백’(은행에 소유권을 넘겨 원리금 부담을 더는 대신 임대료를 지불하는)에 대해 금융기관 쪽은 아무런 손실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으로 ‘폭탄 돌리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우스푸어 양산 배경에는 대출의 무분별성도 적지 않게 깔려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강렬한 욕망도, 충분한 역량도 없이 살아온 내 처지에서 집값의 안정세는 더할 나위 없이 소망스러운 바이나, 그에 맞물려 간헐적으로 터지는 전세대란이 역량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욕망을 불러일으킬까 걱정스럽다. 내년 전세 재계약 때는 은행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 일을 겪지 않게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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