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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주문야안’ / 백기철

등록 2012-10-02 18:52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김영삼·김대중·노태우가 3자 대결을 벌였던 1987년 대선 때 일이다. 군 복무 중에 부대에서 말이 통하는 학출들끼리 잘 어울렸는데 양김 단일화 문제로 사달이 났다. 디제이를 지지하는 전라도 고참이 와이에스를 지지하는 경기도 졸병을 설득하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토론은 화해 불가능한 불화로 끝이 났다. 당시의 흔한 풍경이다.

요즘 문재인과 안철수를 놓고 벌이는 야당 지지자들 사이의 신경전이 사뭇 날카롭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지만 생각들이 상당히 갈린다. 안철수를 어찌 볼까 하는 게 주요 논점이다. 한쪽에선 정치를 모르는 선무당이 야당 판을 말아먹으려 든다 하고, 다른 쪽에선 시민들이 정치를 바꿔달라는데 뭐 어떠냐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헷갈린다. 낮에는 문재인이었다가 밤에는 안철수가 되는 형국이다. 이름 붙여 ‘주문야안’(晝文夜安)이지 싶다. 이리 생각하면 문재인이고, 저리 생각하면 안철수다.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건 둘 다 확실한 답이 아니란 얘기다.

안철수는 대통령 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되고 나서가 너무 걱정이다. 정치판에서 그래도 잔뼈가 굵었다는 노무현도 청와대에서 고립무원이었는데 안철수는 어찌할까 생각하면 끔찍하다. 정치라는 게 무슨 전문가들 네트워크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친노의 핵심 문재인이 다시 청와대에 대통령으로 들어가는 건 우리 정치에선 아주 낯선 풍경이다. 과거 정권의 핵심 세력이 얼굴마담도 내세우지 않고 정권을 곧바로 다시 거머쥐는 걸 국민이 용납할까? 호남이 문재인을 맘껏 밀지 못하는 이유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전통적인 야당 지지자들은 노무현과 정몽준을 놓고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정략적인 단일화였지만, 정통 야당 지지자의 6~7할은 노무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번 대선의 단일화 모양새는 87년 대선에 가깝다. 여론조사 수치나 여론 주도층의 동향 등을 빼고 더하면 야당 지지자들이 반으로 쫙 갈린 형국이다.

양김 단일화가 깨져 죽 쒀서 개 준 87년 대선을 복기할 때 가장 큰 교훈은 양보하는 쪽이 결국 이긴다는 점이다. 87년엔 양김이 고집불통으로 버티면서 둘 다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패배자가 됐다. 또다른 교훈은 후보 말고 어느 누구도 단일화를 추동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무현이 그랬듯 단일화는 후보 자신의 고독한 결단의 산물이다.

역사에 반복이 없듯 단일화도 새로운 버전이 아니면 안 된다. 뭐가 새로운 버전일까? 기본에 충실하는 거다. 선거의 기본은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좀더 행복한 삶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 단일화를 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국민을 좀더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공학이 아니라 정책과 인물이란 얘기다. 두 후보가 무슨 토크쇼를 하든, 연석회의를 하든, 양자 대화를 하든 경제민주화의 방법론, 제주 해군기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처리 방향, 집권 이후 개헌 등 정치개혁 일정, 남북관계 복원 구상 등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두 사람의 역할분담 구상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야권 지지자들이 둘을 놓고 좌고우면하는 건 두 사람이 따로 떼어놓으면 엄청난 약체 후보이기 때문이다. 홀로서기가 안 된다는 얘기다. 반쪽이들은 힘을 합쳐야 온전한 한쪽이 된다. 시대정신과 변화를 상징하는 안철수, 국정 운영의 경험과 인맥, 정통성을 갖춘 문재인이 합쳐야 정권교체를 이룰까 말까다. 두 후보는 운명처럼 2인3각을 하도록 되어 있다. 2인3각이 깨지는 순간 모든 게 날아갈 수 있다. 누가 후보가 되든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함께 승리하는 길을 찾길 바란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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