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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오늘밤 ‘그것’ 하십니까? / 김양희

등록 2012-09-18 19:28수정 2012-09-19 13:39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새벽 1시. 남편의 휴대폰 카카오톡 메시지 안내 소리가 들린다. 빨간색 하트(♥)가 순간 눈에 들어온다. 다 알면서도 장난스럽게 흘겨본다. 5초 뒤 내 휴대폰에도 똑같은 하트가 뜬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 “형부는 1등인데, 언니는 68등이잖아!” 남편한테 한번 웃어주고 다시 ‘60초 전쟁’을 시작한다.

카카오톡과 연계된 스마트폰 게임, 애니팡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60초 동안 동물그림 3줄을 빨리 없애는 게임인데, 출시 한달 만에 1200만명 이상이 무료앱을 내려받았단다. 휴대폰 매장에서는 “애니팡 되는 것으로 달라”고 주문하는 40대 소비자까지 있다고 한다.

스포츠 현장도 다를 게 없다. 훈련 전후 야구장 코치실은 ‘뿅’, ‘뿅’ 하는 소음으로 가득 찬다. 선수들도 라커룸에서 오른 검지를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경기 전 스트레스를 푼다. 원정 경기 때 구단 버스에서도 들리는 소음은 ‘뿅’, ‘뿅’뿐. 경기장에서 마주치는 일부 선수들은 “하트 주기 힘드니까 순위 좀 올리세요”라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해댄다.

비단 야구 선수뿐만이 아니다. 배구 선수도, 테니스 선수도, 정구 선수도 모바일 공간에서 ‘손가락 전쟁 중’이다. 심판이나 감독도 예외가 아니다. 안 하면 진짜 ‘왕따’가 될 분위기다. “하트 좀 날려줘”라는 여자친구의 문자에 하트 이모티콘이 듬뿍 담긴 메시지로 답했다가 구박만 받은 눈치 없는 남자친구 얘기에 한바탕 웃었다.

애니팡의 매력은 실시간으로 뜨는 개인순위에 있다. 카카오톡에 등록된 지인들의 순위만 확인되니 승부욕이 발동 안 할 수가 없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라서 순위가 꽤 신경 쓰인다. 인간 본연의 ‘지고는 못 사는’ 승부 본능이 말초신경을 자극한다고 할까.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약중인 스포츠 선수들의 순위를 확인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유독 야구 선수들의 순위가 높은데, 30만점을 훌쩍 넘는 선수들이 꽤 있다. 같은 팀 투수, 타자끼리의 점수 대결을 3자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애니팡’
‘애니팡’
싸움에는 ‘총알’이 있어야 하는 법.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하트가 필요한데, 이게 8분에 한 번꼴로 하나만 생성된다. 하지만 지인들에게는 시간마다 무한정 받을 수가 있어 시시때때로 구원(사랑)의 손길을 요구한다. 하트를 직접 구매하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내가 남에게 주거나 남이 나에게 주는 하트는 공짜다. 인간관계가 게임의 기반이 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때문에 마당발인 안경현 <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SBS ESPN) 야구해설위원은 하트가 500개가 넘는다고 자랑하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와서 친구가 별로 없는 조카 녀석은 시간마다 하트를 달라고 졸라댄다. 인간관계에 의해 파생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랄까.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게임 아이템이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인 것도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새벽에 ‘하트’를 날리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사실 게임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눈도 느리고, 손의 반응속도는 더 느리다. 그래도 가끔씩 접속을 한다. 연락이 뜸했던 초등학교 동창생부터, 전화번호만 주고받았을 뿐인 사람들에게까지 하트를 한 번씩 날려준다. 답이 없어도 괜찮다. 한번 맺은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들에게 ‘60초’를 선물한 것에 만족한다.

오늘도 나는 하트를 꾹꾹 눌러 상대에게 보낸다. ‘당신은 잘 있냐’고, 그리고 ‘나는 잘 있다’는 뜻을 담아서. 말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가장 저렴하게 그렇게 안부를 묻는다.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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