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올해 대선은 역대 선거 중 최악의 네거티브 공방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상대편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인신공격성 비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맞붙은 미국 대선 이야기다.
올해 미국 대선이 ‘텔레비전 등장 이후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이 될 요인으로 미국 정치전문가들은 세 가지 정도를 꼽는다. 우선 무제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이른바 ‘슈퍼 팩’(Super PAC)의 등장으로 네거티브 광고전에 투입할 실탄이 풍부해졌다. 지난 4년 동안 민주-공화 양당 간 감정의 골도 팰 대로 패었다. 거기다 상대편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만큼 후보들의 개인적 약점도 적지 않다.
네거티브 선거전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네거티브의 긍정적 측면’(positivity of negativity)을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네거티브를 위한 변명>이란 책을 쓴 존 기어 교수는 “네거티브는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속성”이라고 잘라 말한다. <뉴욕 매거진>의 프랭크 리치 역시 “네거티브 선거전은 미국의 디엔에이(DNA) 일부분”이라며 “역사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떠올려보면 지금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앤드루 잭슨과 존 퀸시 애덤스가 맞붙은 1828년 대선 당시 잭슨은 ‘식인종’, 그의 부인은 ‘매춘부’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선진정치 국가로 떠받들어 모시는 미국도 이런 형편이니 우리도 네거티브 선거 문제로 너무 낙담하거나 우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네거티브전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다만 네거티브 선거전의 양상을 좀더 업그레이드할 필요는 있겠다.
하지만 올해 대선에서도 진흙탕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안철수 교수의 룸살롱 출입 논란과 숨겨둔 여인 의혹, 그리고 박근혜 후보의 사생아 출생 논란 등은 검증의 외피를 쓴 악성 네거티브의 대표적인 예다. 김현철씨의 한 월간지 인터뷰 발언에서 비롯된 박 후보의 사생아 논란은 사실 네거티브라는 딱지를 붙일 수준도 못 되지만, 안 교수를 둘러싼 몇몇 의혹들은 아직도 폭발성을 안은 휴화산이다.
숨겨둔 여자든, 사생아든 사실관계가 확인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흘러가는 모양새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도덕성 검증이라기보다는 대중의 얄팍한 호기심과 관음증을 겨냥한 기획성 네거티브 성격이 짙다. 안 교수 본인이 룸살롱 출입 사실 자체를 부인한 적도 없는데 ‘가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밝히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는 것도 그렇다. 만약 박근혜 후보 뒤를 쫓아다니며 ‘혹시 남자와 잠자리를 해본 경험이 있느냐’를 따져묻는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겠는가. 검증도 좋고 네거티브도 좋지만 물어볼 것을 물어보고 따질 것을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역대 대선의 네거티브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쟁점이 된 본안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후보들의 태도였다. 어떤 사안에 부닥쳤을 때 보일 리더십의 모습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수많은 도덕성 논란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른바 ‘마사지 걸’ 발언 파문이었다. ‘발마사지’니 뭐니 하며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말로 사안을 교묘히 얼버무리는 뛰어난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정운영을 저런 식으로 하면 참으로 걱정인데’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일본의 영향력 저하’ 등의 발언과 그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그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의 안철수 교수 불출마 협박 논란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친구끼리 한 이야기를 확대해석하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구태 정치”라고 비판했다. 궁금한 것은 박 후보가 정말로 그렇게 믿고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씨의 일탈행위가 지닌 문제점을 알면서도 정치적 공격을 하는 것인지다. 후자라면 차라리 낫다. 박 후보의 사람을 선택하는 안목, 사실관계를 엄밀히 파악하는 능력, 아랫사람의 잘못된 행동에 대처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의 취약성이 자꾸만 눈에 걸린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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