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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국가폭력, 그 비인간성 / 박혜령

등록 2012-08-31 19:15

박혜령 농민
박혜령 농민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인류의 등장은 23시59분40초경에 불과하다. 그중 산업화 이후 오늘날과 같은 국가권력 아래서의 역사는 시계의 어디쯤에 놓여 있을까? 이 짧은 기간에 인간은 물질문명을 급격하게 확장해왔고, 이를 인류의 쾌거라고 자축한다. 굶주림과 존재의 위협에서 벗어나 만물의 영장으로 자연을 지배·통제할 수 있는 구조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국가권력과 지배자, 이들에게 넘겨준 권력이 과연 합당하게 발현되고 있는지 깊이 돌아볼 일이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국가는 질서와 평화의 보장, 정치적·법적·실질적 자유와 평등이라는 공동이익을 증진하고자 한다고. 또 어떠한 사회조직보다 우월한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 질서와 평화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자유와 평등의 증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가권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평화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행사한다는 국가폭력은 정당한가? 한쪽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다른 이의 자유와 평등이 희생되는 것은 적절한가?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국민의 권리가 유린되는 것은 필요악인가? 그게 아니라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물음표를 던져야 할 일이다.

동일노동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의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인구가 70%를 넘어서고, 회사의 이익이 곧 나의 생존이라는 논리에 생산비 절감을 위한 야간근무가 당위로 행해진다.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권을 행사하는 모든 활동은 사회질서를 흔드는 불순한 것으로 간주된다. 국가의 공공성을 주장하면서도 기업의 사병조직을 묵인한다. 기업과 대도시의 에너지 수급을 위해 핵발전이라는 잠재적 핵폭탄을 감수하라고 한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보다 개발해놓은 핵기술로 이윤을 만드는 기업 논리가 우선이며, 핵무기 개발 기술 보유로 패권적 국제 위상의 확보가 정당하다. 초고압 송전탑의 건설로 대를 이어 지켜온 터전에서 주민을 내모는 것이 불가피하다. 다수를 위한 일부의 희생은 필요악이라는 논리다.

국민은 희생의 대가로 주어지는, 국가가 정한 보상과 지원에 어떤 이의나 항의도 있을 수 없다. 휴대폰을 팔아 쌀을 사먹겠다며 농업을 세계시장에 내주고, 대신 300만 농업인구에게 글로벌시대에 맞는 최첨단기술로 부농정책을 달성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상기후로 식량수급의 위협이 있지만 식량자급률은 3%대인 것이 한국 농업의 현주소다. 현재 농촌은 87.6%의 가구주가 50대 이상이며, 지원금을 받는 이들은 사회적 불합리에도 할 말을 못하는 벙어리 신세로 전락했다. 아무런 합의 없이 초고압 송전탑이 마을에 들어오고 이에 항의하는 80대 어르신 앞에 한전이 고용한 20대 용역들이 막아선다. 입에 담지 목할 욕을 쏟아내고 강제로 끌어내는 폭력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이를 방조하고 묵인한다. 이 모든 것이 상식적이고 합당한가?

개인의 신념과 의지를 표현하는 평화롭고 정당한 정치적 행위를 억압하는 국가권력은 개인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가장 고전적인 물리적·심리적 폭력이다. 국가폭력은 무기력과 분노를 자아내지만 사회의 불의에 눈감게 하는 미묘한 심리적 억압 기제다. 이 시대는 진정 평화로운가, 아니면 평화롭게 보이는 시대인가. 어디선가 희생과 박탈에 울부짖는 이들이 있다면 평화로 위장한 장막을 걷어야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 나온 키팅 선생의 말을 곱씹어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산다. 체념하는 대신… 타파해야 한다. 가장자리만 맴돌지 말고 주위를 둘러봐라. 사고를 전환해서 새로운 것을 개척해라.”

박혜령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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