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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메달의 가치 / 김양희

등록 2012-08-21 19:21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런던올림픽이 끝났다. 메달리스트들은 여기저기 행사에 참석하느라 바쁘다. 올림픽 메달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메달의 시선으로 한번 풀어본다.)

안녕하세요?

제 몸무게는 400g입니다. 금, 은, 동 색깔은 달라도 몸무게는 똑같죠. 지름은 85㎜, 두께는 7㎜. 베이징올림픽 때는 더 작았답니다. 대회 때마다 다이어트도 했다가, 몸집도 불렸다가 그러지요. 사실 금박 옷을 입고 있어도 실제 금은 1~2%밖에 안 돼요. 대신 은이 92% 이상이죠. ‘금메달’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개당 원가는 100만원 이하입니다. 동메달이요? 그 친구는 원가가 5000원도 안 돼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 때문에 울고 웃고 한답니다.

그렇다면 제 값어치는 얼마나 할까요? 남자 체조의 양학선 선수나 미국 여자 체조선수 가브리엘 더글러스를 예로 들지요. 두 선수 모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는 공통점이 있답니다. 부모님이 비닐하우스에 살아서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했던 양 선수는 정부(6000만원)와 체조협회(1억원)가 주는 포상금 말고도, 어느 그룹 회장님이 5억원을 주기로 했고, 아파트 기증을 넘어 비닐하우스 터에 집을 지어주겠다는 기업까지 있습니다. ‘금’이 ‘금’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흑인 선수로는 여자 체조 사상 처음 일인자가 된 더글러스는 수년간 1000만달러(113억원), 평생 1억달러(1133억원) 이상 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더군요. 어머니가 딸 뒷바라지를 하다가 파산했다는데 대박이죠? 그런데 역시 ‘돈’이 문제인가 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직 눈앞에 있지도 않은 돈을 놓고 엄청나게 싸우고 있거든요. 더글러스 선수는 제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물론 현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도 있습니다. 과테말라는 이번 올림픽에서 최초로 저를 품에 안았는데요. 남자 경보 20㎞에서 ‘은’을 목에 건 에리크 바론도 선수가 소감에서 그러더군요. “아이들이 내가 목에 건 메달을 보고 칼과 총 대신 운동화를 선택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요. 저 하나로 세상이 통째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갱단이 아닌 다른 꿈을 꾸게 된다면 과테말라의 미래도 조금은 바뀌겠지요. 이래저래 한동안 선수들이 가는 곳마다 제가 있을 겁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에 제 몸은 세상 어느 것 부러울 것 없이 빛나겠지요.

사실 색깔별로 차별받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예전보다 덜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금메달만 편애하는 것 같아요. 은메달, 동메달이 지금 울고 있답니다. 더 나아가 우리들만 우러러보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해요. 올림픽에서 1~3등을 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앞으로는 저랑 관계없이 기업들이 스포츠 선수를 후원하고, 정부도 학교체육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노력들이 더해져서 앞으로 다양한 종목에서 더 많은 제 친구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겠지요.

화려한 시절이 지나갑니다. 저는 곧 ‘감옥’으로 들어갑니다. 장식장이나 서랍, 혹은 개인 금고가 제 평생 집이 되는 거지요.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을까요? 주인님이 가끔 꺼내 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안 보인다고 사람들이 저를 잊으면 어떡하죠? 4년 뒤에나 다시 기억하면요? 제 몸이 먼지로 덮이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저로 인해 웃고 울던 그 순간은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전 4년에 한번 반짝이기는 싫으니까요. 그리고 꼭! 올림픽의 승자와 패자를 만드는 것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세요.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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