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경제부장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었던 건 199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 제대 뒤 복학해서 언론사 입사를 준비중이던 때였다. 공부모임 구성원 중에 컴퓨터 도사 반열에 오른 이가 있었고, 그 친구한테서 도스(DOS) 프로그램 기초 이용법을 배우는 동안 안철수와 백신 프로그램 V3에 얽힌 얘기를 들었다.
전공과 거리가 먼 영역에서 숱한 밤을 새워 연구한 결과물을 무료로 배포했다는 사연을 듣고선 그의 초기 저서 제목에 포함된 수식어처럼 참 ‘별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10년쯤 뒤에 기자로서 그를 인터뷰를 하게 됐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일할 때로, 2001년 12월 경제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새해 주목할만한 경제인’을 추천해 달라는 일종의 설문조사 작업을 벌인 뒤끝이었다. 그 조사에서 응답자의 압도적 다수가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과 안철수 당시 안철수연구소 사장을 꼽았다. 두 사람에 대한 품평에서 어느 대학교수는 “기존의 낡은 권위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공을 이룬 경우”라고 요약했다.
돌이켜보면, 두 사람의 부각 배경에는 시대적 상황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뒤 대우그룹이 몰락하고 현대그룹마저 사분오열되면서 기존의 성공 모델인 김우중 회장과 정주영 회장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으로 상징되는 낡은 체제의 대표 격으로 치부됐다. 김정태 행장과 안철수 사장은 그 대척점에 자리잡은 성공 모델이었다.
구질서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지만,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은 매우 달랐다. 김정태 행장은 주주 중심의 수익성 추구를 제1의 가치로 내세웠다. 국내에서 ‘시이오(CEO) 주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게 그였다. 안철수 사장은 거꾸로 수익성보다 공익성의 깃발을 먼저 내걸었다. 백신 프로그램을 개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공공의 이익을 고려해 미국 회사 쪽의 인수 제의를 거절한 일 따위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이다.
다시 10년이 흐른 지금, 김정태 행장은 잊혀진 인물이 됐고, 주주만을 중심에 두는 수익성 중시 모델은 극복의 대상으로 몰려 있다. 주주만이 아닌 이해관계자 모두를 염두에 두고, 공익성을 앞세운 경영을 외친 안철수 사장은 ‘세상의 화두’로 부각돼 있다.
10년 전 안철수 사장을 인터뷰할 때, 마치 도덕 교과서를 읊는 듯한 그의 경영 철학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회의감을 다 떨칠 수는 없었다. 공익과 정의를 내세우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성공까지 거두는 게 한국 사회,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좀 달리 생각해볼 여지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단어 ‘경제’와 ‘민주화’가 나란히 조합돼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 전부를 긴장시키고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키워드로 떠올라 있으니 말이다. 악착같이 탐욕을 추구해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을 두루 조망하는 ‘착한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게 ‘별난’ 철학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임을 눈으로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녹아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여름휴가 때 제목에 ‘안철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 2권을 읽은 뒤 예전 생각이 나 예의 그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내기라도 해볼 요량으로 장난삼아 물어보았다. ‘대선 나올 것 같아? 나오면 이길 거라고 생각해?’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나오든 아니든, 나와서 이기든 지든 그가 뿌려놓은 새로운 경영 모델의 씨앗과, 그에 바탕을 둔 정책 제안들만은 여든 야든 살려갔으면 좋겠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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