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정치부장을 할 때인 2008년 3월의 일이다. 청와대가 언론사 간부들을 모아 연 이명박 대통령 주재 만찬 간담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보수성향 언론사 간부들의 태도가 좀 그랬다. 청와대 부대변인이 몇몇 사람을 지명해 발언하도록 하는데, “대통령께서 국정관리 부담이 크실 텐데 건강은 어떻게 살피시는지” 정도가 발언의 주종을 이뤘다.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언론인들이 내내 덕담이나 늘어놓는 일은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정부에서 없었다. 과거에는 언론인들이 대통령한테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폈다. 고급 정보를 가진 최고의 취재원을 만났으니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날 청와대의 풍경은 보수언론이 권력감시 구실에서 멀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대 수준으로 퇴행했다.
그날 사회를 본 청와대 부대변인은 기자한테도 발언 기회를 줬다. 일곱째인가 여덟째 만인데 아마도 진보언론인 <한겨레>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서였던 듯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은 있지만 대통령이 새벽부터 일어나 크고 작은 국정과제를 모조리 챙긴다고 부지런을 떠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쓴소리를 예의를 갖춰 먼저 해드리고, 이어 “대선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실제로 추진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청와대 부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걱정한 까닭인지 “박 부장님, 질문 좀 짧게 해주시고” 하며 중간에 끼어들어 질문을 막으려 했다. 청와대 관리가 권위에 쩔쩔매는 모습도 민주화 이후에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인가 보수언론이 박근혜 의원을 모시는 게 꼭 그 모양이다. 언론들은 박 의원한테 특별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 그는 호칭부터 다르다. 꼬박꼬박 ‘전 대표’라고 붙여준다. 정몽준 의원이나 정세균 의원한테 간혹 ‘정몽준 전 대표’, ‘정세균 전 대표’라고 붙여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게 알뜰히 챙기진 않는다.
엊그제 박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 보도를 보면, 이번에는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함을 달았다. ‘전 대표’로도 모자라 한술 더 떴다. 호칭을 승격시키는 효과는 크다. 그 인물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여겨지도록 모양새를 만들어준다.
박 의원의 측근 가운데 55살 이상은 의원 주변 5.5m 반경에 접근을 금지한다고 캠프 좌장인 홍사덕 전 의원이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찍히면 좋을 게 없으니 뒤로 숨으라는 뜻이다. 노인 폄하 발언 성격이 다분하다. 그런데도 “55살 이상…” 발언은 단순한 화젯거리로만 취급되었다. 언론들은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 당의장이 노인 폄하 발언을 했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정 의장은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죗값을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 보도의 형평이 맞지 않는다. 언론이 박 의원을 단단히 봐주는 것이다.
박 의원은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언론인한테 “병 걸리셨어요?”라고 쏴붙인 적이 있다. “지금 저하고 싸우시는 거예요?” “한국말 모르세요?”라고도 말했다. 민주적인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만한 폭력적인 언어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일절 자질 시비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국정 난맥상이 심각하다. 대통령의 친형까지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상당수 언론이 권력감시 구실을 포기하고 엠비어천가나 부른 탓도 클 터이다. 그런 언론들이 이제는 박근혜 의원의 앞길에 등불을 환하게 밝혀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걱정스럽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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