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워런(1891~1974)은 검사 출신으로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를 지냈고, 그를 대법원장에 지명한 것도 공화당 출신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워런 임기(1953~1969) 동안 대법원은 뚜렷한 진보성향의 판결을 많이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당연시되던 인종차별 금지를 명령하고, 흑인이나 공산주의자들에게까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했다. 공립학교에서의 기도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의 중도철학을 믿고 지명했던 아이젠하워가 나중에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술회한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진해온 건강보험개혁법의 핵심조항에 대해 예상을 깨고 합헌 의견을 낸 존 로버츠 대법원장에게 보수진영이 ‘배신자’ 딱지를 붙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5년 대법원장에 지명돼 보수파로 분류돼온 그가 오바마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조계와 언론은 “대법원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실용주의적 선택”이라는 등 긍정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미국 대법원의 기능은 우리의 헌법재판소에 가깝다. 우리 대법원은 상대적으로 정치색이 옅은 편이다. 그럼에도 ‘독수리 5형제’로 불리던 5명의 진보성향 대법관이 있던 참여정부 시절을 빼면 항상 보수 색채가 강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자체를 의심받고 있는 우리 대법원은 사실 보수-진보를 따지기가 낯부끄럽다. 최근 시민단체가 이른바 ‘삼철이 퇴진 1인시위’를 벌이면서 잊고 있던 이름 신영철 대법관(나머지 ‘2철’은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독립은커녕 판결에 개입해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 판사가 대법관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고 버티고 있는 게 우리 대법원의 현주소다. 진보-보수 이전에 국민을 배신한 대법관이 아닐까.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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