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
2012 프로야구 시즌 개막 전이었다. 서울시의 잠실야구장 임대료 관련 취재를 하던 도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야구 구단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한 관계자의 논리는 이랬다. “1년에 세후 2000만원 버는 봉급쟁이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해마다 ‘공돈’ 200만~300만원이 그냥 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몇년이나 버틸 것 같습니까?” 엔씨(NC)소프트처럼 영업이익이 2000억원인 기업이 한 해 200억~300억원 드는 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기업 홍보 효과 운운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홍보 효과요? 결국 구단 이름이 언론 등에 거론되는 것을 현실 광고비 등에 맞춰 수치화한 것인데 기업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줄이는 게 광고비 아니던가요?”
지난 19일 열린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임시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이 유보된 직후 떠오른 것은 그 관계자의 말이었다. 아마도 10구단을 반대하는 일부 구단들의 생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등 지금은 ‘박제된’ 옛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야구단들도 결국에는 모그룹의 자금난 때문에 사라졌다. 프로야구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1995년 당시 500만 관중을 넘었다가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1998년 200만 관중으로 고꾸라졌던 쓴 기억까지 있다. 몇차례 학습효과를 통해 기존 야구단들이 신중론을 펼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스포츠단 창단에는 시기가 있다. 700만명 관중을 향해 가는 지금이 적기라면 적기다. 지방자치단체들이 10구단 창단에 적극적이고, 복수의 기업 등이 야구단 창단에 관심이 있다. 팬들의 인식도 바뀌어서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프로야구’라는 콘텐츠를 사려고 하고 있다.
일반 기업들도 시류를 타면 외양을 확장해 미래를 도모한다. 현 상태 유지는 궁극적으로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구단은 한때 모그룹으로부터 300억원가량을 광고비 명목으로 지원받았으나 올해는 175억원까지 줄였다. 입장료·광고료·중계권료 등 야구단 자체 수입이 상당히 늘었다는 뜻이다. 1년 300억원 예산이 필요한 구단이 있으면, 150억원으로 운영 가능한 구단이 있어도 된다. 그게 자본주의의 논리다. 실제 히어로즈가 그렇게 하고 있다.
일부 구단들은 고교 야구 선수 부족 등을 이유로 대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출생률이 낮아진 결과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들었고, 현재와 같은 시스템상 학업을 포기한 채 야구만 시키려는 부모들도 없다. 기존 구단들이 해야 할 것은 현재 150여개에 이르는 리틀야구 선수들이 고교 졸업까지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1996년 48개, 1998년 52개였던 고교 야구부가 현재도 53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숫자’가 아니라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릇이 있어야 담길 물도 생기지, 어떻게 물이 생긴 다음에 그릇이 생기길 바라는가”라는 야구 원로의 말도 곱씹어볼 만하다.
10구단 체제가 장밋빛 미래만을 예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10구단 창단을 염원하며 일부 야구팬들은 삭발식을 했다. 선수들은 올스타전 보이콧을 선언했다. 극단적인 감정 표출 같지만 왜 이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최소 2년간 지속될 9구단 체제가 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는 마음을 열어 선수와 팬들, 그리고 야구 원로들의 목소리에 한번쯤 귀 기울여봤으면 싶다. 기업만이 프로야구 주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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