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경제부장
김찬경 회장 등
‘퇴출’ 저축은행 대주주들 행태는
도덕적 해이에 불과한 것인가
‘퇴출’ 저축은행 대주주들 행태는
도덕적 해이에 불과한 것인가
퇴출 저축은행 명단 발표를 이틀 앞둔 지난 4일. 담당 팀장과 기사 계획안을 짜면서 관심을 집중적으로 쏟은 대상은 당연히 솔로몬저축은행이었다. 자산규모 5조원의 업계 1위라는 덩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고경영자(CEO)를 둘러싼 이런저런 소문도 결정적인 건 아니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분야에 주도적으로 뛰어들어 급속하게 몸집을 불렸다가 부실화로 이어진 역사가 저축은행 전반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금융위원회의 발표 당일에도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었다. 후속 파장도 주로 솔로몬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터져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그분’ 앞에서 솔로몬저축은행은 관심권의 중심 지대에서 밀렸다. 그분은 죽은말(사어)로 여겨졌던 밀항(密航)이라는 단어에 퍼덕거리는 생기를 불어넣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나 마주칠 법한 역사적 단어를 시퍼런 현실에서 보게 되는 기이함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학력을 속이고, 속인 그 학력으로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발각돼 퇴사했다는 얘기는 흥밋거리 양념이었다. 술에 취해 벤츠를 몰다가 뺑소니 사고를 친 아들의 합의금을 저축은행에서 빼낸 돈으로 지급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숱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다이아몬드광산 개발 관련 업체 씨앤케이(CNK)에 2대 주주로 얽혀 있고, 금융회사 경영인에 어울리지 않게 신용불량자였던 사실도 드러나 있다. 차마 지면에 옮기기 어려운 낯뜨거운 행적들도 현장 기자들을 통해 여럿 보고돼 있다. 가히 엽기적이라 할 만한 행태들이 꼬리를 물면서 자신 소유의 저축은행(미래)에서 1000억원대의 불법대출을 받았다는 뉴스는 심드렁하게 흘려 넘길 정도였다.
점심 먹는 자리에서 만난 이들마다 혀를 내두르며 ‘참, 대단한 분’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날것 그대로 얘기를 쭈욱 이어 엮으면 훌륭한 영화 시나리오가 될 것 같다’는 싱거운 농담까지 보태졌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 속의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킨 것은 ‘모럴 해저드’라는 흐리멍덩한 용어로 그 행각을 묘사한 보도였다. 어느 언론사는 ‘부실 저축은행의 모럴 해저드를 끝장내야’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자못 비장한 결기를 내보였고, ‘검찰이 저축은행의 모럴 해저드를 속속들이 밝혀내겠다는 각오를 세웠다’는 표현을 기사에 담은 신문도 있었다. ‘한꺼풀씩 드러나는 퇴출 저축은행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라는 제목의 기사도 눈에 띄었다.
‘도덕적 해이’나 ‘도덕 불감증’쯤으로 풀이되는 모럴 해저드는 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법 위반은 아니지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때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일컬을 때나 쓰는…. 화재 예방에 대한 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보험 가입자나, 예금보장 제도를 믿고 안전한 은행을 찾는 수고를 하지 않는 금융 거래자는 모럴 해저드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흔하게 들어온 사례들이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비롯한 퇴출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행태가 모럴 해저드인가. 법 기준에 따르면 아무 문제 없지만,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저지른 것이었을 뿐인가. 여러 행적들을 포괄적인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한 언어의 경제성을 고려하더라도, 저축은행법이나 자본시장법 또는 어쩌면 형법 위반으로 여겨지는 행태들에 모럴 해저드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그 무심함은 난감하다. 그게 법 위반이지, 어떻게 모럴 해저드인가. 그런 흐리멍덩한 인식과 용어가 경제사범에 대한 그간의 흐리멍덩한 처벌과 부지불식간에 얽혔던 것은 아닐까.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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