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0년 에스파냐 원정을 마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는 개선장군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로마 시내로 들어오려던 그를 가로막은 건 개선식을 거행할 때까지는 시내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로마법. 집정관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그는, 후보자는 시내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국가공문서관에 본인이 직접 등록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개선식이냐 후보등록이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 궐석 등록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을 낸 그를 가로막은 건 원로원의 젊은 논객 마르쿠스 카토. 당시 해가 지면 회의를 끝내게 돼 있는 원로원 운영규칙을 활용해 그가 해 질 때까지 장광설을 늘어놓은 게 바로 오늘날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의 원조다. 결국 카이사르는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 출마를 선택한다. 이듬해 집정관이 된 카이사르가 공직자윤리법을 원로원에 제출하자 다시 카토가 발언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엔 카이사르가 시간끌기 연설에 나선 그를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감옥에 가둔 뒤 법안을 통과시켜 버린다.
필리버스터 전통은 영국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상당수 서구 국가들에서 아직도 이어져 내려온다. 미국 상원은 시간제한 없이 발언을 허용해오다 1917년 독일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상선을 무장시키자는 법안이 필리버스터로 폐기된 것을 계기로 토론종결제도(클로처)를 도입했다. 당시엔 재적의 3분의 2인 67명이 종결 요건이었으나 75년 재적의 5분의 3인 60명으로 완화했다.
우리 국회에도 필리버스터가 있었으나 1973년 8대 국회 때부터 금지됐다.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가 본회의 필리버스터 보장과 일정 기간 뒤 의안자동상정제도 도입을 뼈대로 하는 국회선진화법, 일명 몸싸움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보수언론의 반대와 새누리당의 번복으로 본회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몸싸움은 비난하면서 몸싸움방지법은 하지 말자는 건 무슨 궤변인가.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아빠의 숨겨진 그녀…엄마와 난 알고도 숨겨요
■ 김어준 “김용민 때문에 야권연대 패배했다?”
■ 손맛이 죽여? 난 너덜너덜해지다 죽어
■ ‘은교’에 ‘노출’이란 검색어가 같이 뜨지만…
■ 욕설 문자 받은 대령, 중령이 건넸던 100만원 털어놓고…
■ 아빠의 숨겨진 그녀…엄마와 난 알고도 숨겨요
■ 김어준 “김용민 때문에 야권연대 패배했다?”
■ 손맛이 죽여? 난 너덜너덜해지다 죽어
■ ‘은교’에 ‘노출’이란 검색어가 같이 뜨지만…
■ 욕설 문자 받은 대령, 중령이 건넸던 100만원 털어놓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