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진보개혁 정당한테 좀더 친화적일
다문화 쟁점에서조차 새누리당한테
뒤진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다문화 쟁점에서조차 새누리당한테
뒤진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경남의 한 농촌에 사는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다. 마을이 모두 60여가구인데 그 가운데 다문화 가정이 열에 하나꼴인 일곱 가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곱 가구 가운데 아이를 낳지 않는 가구가 다섯 가구나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 가족을 늘리거나 대를 이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다문화 아내’를 노동 이민자로 취급한다는 이야기다. 노동에는 농업노동, 가사노동 등이 두루 포함될 것이다. 남편은 다문화 아내에게 다달이 100만원씩 주어 모국으로 부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남편들은 대개 4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있다고 한다.
상담기관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문화 아내가 아이를 낳은 다음에 아이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격리당하거나, 구박을 받고 쫓겨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아이를 얻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아이가 엄마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접하지 못하도록 아예 가로막자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아이가 긍정적인 자아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또한 일선 학교에서 교사가 다문화 가정 학생에게 “어이 다문화 다문화”라고 생각 없이 불러 상처를 주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결혼연령 인구의 성비 불균형 등으로 다문화 가족은 계속 늘고 있다. 2011년에 결혼 이민자와 자녀의 합계가 36만명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다문화 가족에 대한 수용성은 매우 미흡하다.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국가적 정책적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총선 이야기를 하자. 민주통합당은 이번에 다문화 쟁점에서도 새누리당한테 완벽하게 뒤졌다. 단적으로 새누리당은 필리핀 출신인 이자스민씨를 공천해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시켰다. 이씨는 실은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발굴해 공천하는 게 좀더 어울릴 사람이다. 비정규직만도 못한 게 다문화 여성이며, 88만원 세대보다도 못한 게 이주노동자들인 까닭이다. 더욱이 야당들은 새누리당을 특권층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서민의 대변자라고 주장해오지 않았는가.
공천뿐만이 아니다. 민주당 공약은 다문화 아내에 대한 한국어·한국문화 교육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문화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끌어다 맞추자는 일방주의적이며 전통적인 발상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새누리당 공약은 엄마(아빠) 나라 언어 교육을 위한 ‘언어영재교실’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자녀들이 다문화 엄마(아빠)의 언어를 익히면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 공약보다는 몇 걸음 진보적인 발상이다.
민주당이 이자스민씨 같은 사람을 놓친 데는 이유가 있을 듯하다. 즉 여러 계파가 서로 자기 사람을 밀어넣겠다고 나눠 먹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다른 고려사항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결과 정당에 조직적으로 참여해 계파를 형성할 능력이 없는, 하지만 정치적 대변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사회적 약자 집단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말았다.
민주당의 부진한 총선 성적표를 둘러싸고 분분한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너무 진보적으로 간 게 문제라거나 그 반대라거나 하는 이른바 좌클릭, 우클릭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여러 계파가 기득권을 꽉 움켜쥐고 자기 것은 한 움큼도 내놓지 않으려는 욕심의 구조, 세력 간 담합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고 싶다. 진보개혁 성향 정당한테 좀더 친화적일 다문화 쟁점에서조차 새누리당한테 뒤진 것을 야당 사람들이 좀더 심각하게 성찰했으면 한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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