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찬 탐사보도팀장
진짜 정치는
출마 강행 너머에…
더 큰 정치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출마 강행 너머에…
더 큰 정치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2010년 봄, 그를 처음 만났다. 각종 ‘토크 콘서트’의 원조인 <한겨레21> ‘인터뷰 특강’ 사회를 그가 맡았다. 김제동씨가 특강에 나섰다. 김씨는 청중을 들었다 내려꽂았다. 웃다 죽는 줄 알았다. 반면 사회자는 배경처럼 조용했다. ‘왜 사회를 맡은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그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스타일이야. 항상 깍듯하고 공손해.”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용민(38)씨는 강남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학위를 땄다. 논문 대필만 하지 않는다면, 공부는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는 신학도에서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1998년부터 기독교계인 <극동방송> <기독교티브이(TV)> 등에서 피디로 일했다. 번번이 사주의 전횡에 반발하다 잘렸다. 그의 그리스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리스도와 달랐다.
2003년 그는 <라디오21> 피디가 됐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게릴라 라디오’를 꿈꾸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지상파 방송의 지방분권화 연구’다. 그는 더 유연한 저널리즘을 꿈꾸었다. 2009년 봄 인터넷 방송 <하니티브이> 개국 프로그램이자 팟캐스트의 원조인 ‘뉴욕타임스’에 합류했다. “꼼꼼하게 준비하면서도 아이디어가 넘쳤다”고 함께 일한 사람들이 말했다.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2010년 가을 <나꼼수>를 구상하여 내놓았다. 그다음 이야기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는 거듭 진화했다. 제도언론을 넘어서는 언론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 절정의 순간에 그는 총선에 출마했다. 그것이 또다른 진화인지는 모르겠다. 언론의 진화를 더 밀어붙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속죄하려고 출마한 것 같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 <나꼼수>를 구상해 정봉주 전 의원을 끌어들였고,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정 전 의원이 정치적 탄압을 받아 감옥에 갔으니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의 무죄를 정치적으로 입증하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가 무죄인 이유에 대해선 박용현·이순혁 기자가 쓴 <정봉주는 무죄다>를 참조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가 막 진화를 시작할 무렵, 성인 대상 정치풍자 방송에서 내뱉은 말들이 절정에 이른 그의 진화를 낚아챘다. 그의 몇몇 발언은 상스럽기 이전에 옳지 않다. 언론사를 세습경영하면서 뉴스 사이트에 음란 동영상을 올려놓은 이들이 “지역구 세습하는 저질 막말 정치인”이라 비판해도, 그 자격을 논하기 전에 돌부터 맞을 발언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이걸 부정하면 우린 모두 악마다.
물론 우리는, 적어도 나는 과거에 어쩌면 지금도, 악마를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고결한 척하는 사람들이 경탄스러우면서도 싫다. 다만 공익을 대표하는 정치를 하려면 악마적 치부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저 고결한 목소리는 옳다. 그에 대응하는 방식이 출마 강행이라면 실망이다. 진정한 결별은 움켜쥔 것을 놓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할 때, 진보신당이 청소아줌마를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할 때, 정치공학 대신 가치·정책을 앞세운 녹색당이 분투할 때,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 누르며 우회로를 선택할 때, 정치는 과거와 결별하고 마침내 미래를 연다. 짐승의 근육이 지배하는 정치를 합리적 이성의 지배로 바꾸고, 복잡한 정책을 직관의 언어로 표현할 때, 정치는 대중을 참여시킨다. 그것이 정치 진화의 큰 방향이고 <나꼼수>를 탄생시킨 언론인 김용민이 의도했던 바다. 이제 정치인이 됐으니 계속 정치를 하되, 더 큰 정치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그래야 성희롱·논문대필·친일극우·민간인 사찰과 대결할 수 있다. 그 최전선에 정치인 김용민이 서 있다.
안수찬 탐사보도팀장 ahn@hani.co.kr, 트위터 @egalia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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