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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신데렐라 마케팅’의 씁쓸한 풍경

등록 2012-03-28 19:35수정 2012-04-06 14:12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4·11 총선의 신데렐라는 두말할 나위 없이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다. 27살의 어린 나이에 집권여당의 국회의원 후보, 그것도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뚜렷이 내세울 경력이나 경험도 없는 평범한 젊은이에서 순식간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전국적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그를 궁궐 무도회에 가게 해준 요정 대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옷과 보석, 마차를 마련해주고 예쁜 유리신도 한 켤레 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정이 지나기도 전에 마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의 거짓말 논란이 가열되면서 호화로운 드레스는 누더기로, 마차는 호박으로, 말은 생쥐로 변해버리기 일보직전이다. 신데렐라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발하던 왕자(유권자)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신데렐라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대모를 만나자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렸다. “이렇게 자객이 많은지 몰랐다”는 푸념도 쏟아냈다. 공직 후보자 검증이라는 언론의 당연한 의무도 그에게는 배 다른 언니들의 심술과 구박일 뿐이다. 대모도 “억울한 게 많은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의 눈물을 지켜보는 심정은 씁쓸하다. 사실 그의 언행 불일치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액수만 적다 뿐이지 그동안 흔히 보아온 공직 후보자들의 말 바꾸기 축소판이다. 20대 때의 3000만원은 40~50대로 치면 3억원, 30억원에 해당한다. 손 후보보다 갑절이 훨씬 넘는 세월을 살아온 상대편 후보한테서도 별 잡음이 안 나오는데 그 나이에 벌써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는 것부터가 실망스럽다. 불리하면 언론 탓부터 하는 것도 ‘떡잎의 건강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의 눈물은 그 나이 또래에 흔히 볼 수 있는 자기연민의 감정 과잉이다. 남의 비판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감정을 분출하는 모습은 아직 심리적·사회적 성숙이 덜 됐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안쓰러운 연민의 정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철부지’를 무도회로 밀어넣은 자들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손 후보의 거짓말 논란에 대해 새누리당은 “기성세대도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 운운하며 검증하는 쪽을 나무란다. 하지만 그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은 바로 그들이다. 자신들의 이념과 철학에 맞는 ‘정치적 꿈나무’를 발견했으면 미래의 재목으로 튼튼히 키워내는 것이 기성 정치권의 책무다. 천자문도 떼지 않은 아이를 서둘러 과거 시험장에 몰아넣고 “아직 모르는 게 많은 탓이니 순수하게 봐달라”고 말하는 것부터 난센스다. 그가 만약 국회의원이 돼서 엉뚱한 행동을 해도 계속 “잘 몰라서”를 연발할 것인가.

새누리당의 ‘손수조 띄우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마케팅이다. 그를 젊은이의 우상으로 만들어 젊은 표심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모든 신데렐라 드라마가 그러하듯 이 안에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고, 드라마 속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하며,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드는 판타지다. “젊은이의 꿈과 용기” 따위의 수사에는 환상을 부추기는 눈속임이 녹아 있다.

가혹하게 말하면 신데렐라는 요정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이기도 하다. 대선 라이벌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정치적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의 산물이다. 그래서 원작 동화와 달리 이번 신데렐라 버전에서는 마법을 지닌 대모가 수시로 출몰한다. 심지어 대모가 직접 신데렐라와 함께 선루프가 장착된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까지 벌였다.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되지 않는 마법도 전수했다.

박근혜 위원장이 손수조 후보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것일까. 개인적인 판단은 ‘아니다’ 쪽이다. 단지 여론조사에서 그의 당선 가능성이 낮게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 위원장은 한때 ‘안철수 바람’에 맞서 정당의 제 모습 찾기, 정치의 정상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정치를 희화화해 버렸다. 국정운영에서 경험과 경륜의 중요성을 강조할 근거도 잃어버렸다. 박 위원장은 어렵더라도 정공법을 선택했어야 옳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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