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이명박 정부 외교는
응징·분노 외교…
그 이후에 대한
전략적 대안이 없다”
응징·분노 외교…
그 이후에 대한
전략적 대안이 없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한반도 문제를 지켜보니, 이명박 정부에선 한 가지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 한국 정부가 핀치로 몰릴 때, 미국 정책당국자가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한다. 그 정책당국자가 국무부 대변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때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이 주최한 뉴욕 한반도 세미나 와중에도 그랬다. 참가자들은 애초 한국 정부가 이 회의에 북한 대표단이 참석하는 걸 막으려다 2·29 베이징 북-미 합의와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의 참석 등으로 국무부가 북한 대표단에 비자를 발급할 수밖에 없자, 그다음엔 무리하게 참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통미’를 막으려다, 안 되니 ‘봉남’이라도 피하자는 심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북-미 관계 개선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하다. 김정은 체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식량지원과 국제사회와의 소통이라는 희망을 인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선거를 앞둔 오바마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공습 위협과 얽혀 있는 이란 핵문제로 어지러운데 북한까지 맞대응하기 힘들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근본적 물음과 상관없이 ‘선거 끝날 때까지라도 조용히’라는 필요에 직면해 있다. 클린턴 장관이 세미나 기간 동안 워싱턴을 방문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담 뒤 “한국과 미국의 틈을 벌리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며 또 한번 ‘한-미 동맹’에 힘을 실어줬지만, 말이 허공에 떠다닌다. 뉴욕 세미나에 참석한 리용호 부상이 러시아·중국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다. 일본 언론은 북한이 일본과 북송자 문제를 협의한다고 보도했다.
돌아가는 모양새는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이 아닌 한국이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듯하다. 2·29 북-미 합의에는 미국이 그동안 북한에 요구한 핵실험 및 우라늄 농축활동 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식량지원 모니터링 등 거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지만, 한국 정부가 요구해 왔던 ‘남북관계 개선’ 조항은 빠져 있다. ‘립서비스’와 ‘협상’의 차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대화’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틈날 때마다 대북 강경 발언을 내뱉으면서 또 한쪽으론 ‘무조건’ 대화를 하자니, 마치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세미나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외교는 응징·분노 외교”라며 “그 이후에 대한 전략적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통일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마도 통일정책을 국내 정치의 한 요소로 이용하려 하는 점일 것이다.
최근 한-중 간 최대 외교분쟁이 되고 있는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도 그러하다. 민간단체 또는 국회의원이 보편적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단식투쟁하는 국회의원한테 대통령이 전화를 걸고 이를 자랑스레 공개하면서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요청하며 조용히 추진해야 할 일을 만천하에 떠들어 버렸다. 오죽했으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때론 조용하게, 물밑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을까? 문득 궁금증이 인다. ‘탈북자’를 위한 것인가, ‘보수표 결집’을 위한 것인가 하는. 그 대가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여부가 모호해진 한-중 외교의 파탄과 중국 거주 탈북자의 신변 위협이다.
이제 6자회담이 열리면 이명박 정부는 중국에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당분간 6자회담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미국도, 북한도 양자 협의를 통해 최대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어쩌면 6자회담 참가국 모두 이명박 정부가 물러나길 기다릴지도 모른다. 아마 한국의 직업 외교관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권태호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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