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종교 행보를 통해
국정 실패를 성찰하기는커녕
그릇된 믿음을 더욱 굳히고 있다
국정 실패를 성찰하기는커녕
그릇된 믿음을 더욱 굳히고 있다
제43대 미국 대통령인 조지 부시는 백악관에서 아침마다 성경을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에는 목사를 초청해 예배를 보았다. “백악관이 교회냐”라는 비난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연설문 담당자로 일했던 데이비드 프럼은 부시한테서 “성경공부 모임에서 볼 수 없는 게 유감”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열성적인 종교행보가 개인 활동에 그치지 않고 국정, 특히 대외정책에 깊이 투영되었다는 점이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시작할 때 아버지 부시와 의논했냐고 기자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겐 두 분의 아버지가 계시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는 텍사스에 계시고 한 분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 나는 더 높이 계시는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결정했다.” 부시의 유명한 ‘악의 축’ 발언에도 종교적 배경이 있었다고 한다. 애초 연설 초고에 이란, 이라크, 북한을 ‘증오의 축’이라고 표현한 것을, 좀더 신앙적인 인상이 풍기도록 바꿔보라고 해서 ‘악의 축’으로 했다는 것이다.
대외관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로 규정한 부시의 정책은 흔히 메시아주의로 설명된다. 세계를 미국의 가치와 제도에 맞게 교화하는 것이 정의이며 자비라는 게 그 뼈대다. 하지만 이렇게 오만하고 일방주의적인 태도는 세계적인 저항을 부르고 미국의 지도력을 약화시킨 원인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종교적 ‘열정’으로 논란을 빚기로 부시한테 뒤지지 않는다.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했고, 대통령 취임 초반에 소망교회 출신들을 중용했다. 공공 교통정보망에서 불교사찰을 삭제했다는 시비가 벌어졌고, 지난해에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초유의 장면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일부 기독교단의 지지가 더욱 굳어졌을지 몰라도, 상식을 중시하는 많은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인들은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다.
이런 터에 지난 8일 이 대통령이 또다시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주최 쪽은 이 대통령한테 “하느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이 대통령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예비하고 계실 줄 믿는다. 낮은 자세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화답했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내 갈 길’을 밀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엊그제 행보가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이 대통령의 ‘임기말 상황’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 지도력은 정말 초라하게 무너지고 있다. 단적으로 새누리당 공천에서 이명박계 의원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2008년 공천 때 친이계 중심으로 친박계를 ‘학살’했다면, 지금은 친박계가 친이계를 ‘도륙’하는 꼴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항변조차 못하고 있다. 그런 터에 대통령이 종교행사에서 아부성 발언에 도취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딱하지 않은가.
이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지도력을 되찾길 기대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대신에 생각이 다른 사람과 세력을 고려하는 공감의 행보가 필요하다. 국정에서 틀린 점을 인정하고 고치는 자세도 간절히 기대된다. 헝클어진 국정을 수습하고 성과를 정리하는 데 남은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종교행사가 제공하는 일시적인 달콤함에 젖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닭이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전병금)는 같은 날 한 교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부옥 목사(양무리교회)는 언론 통제, 보복성 검찰 수사 등을 거론하며 “현 집권자는 민주주의 훈련이 잘못되었고 성서적 신앙의 밑받침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대통령한테 약이 될 종교행사가 따로 열렸던 셈이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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