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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안철수, 정치를 카피하다 / 백기철

등록 2012-03-11 19:13수정 2012-03-11 20:25

백기철 정치부장
백기철 정치부장
안철수의 행보가 새삼스런 이유는
정치권의 과거회귀적 행태 때문이다
공천 과정이 친박·친노에 묶여 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얼마 전 탈북자 농성장을 찾은 건 참 그다운 행보다. 보수의 이슈지만, 진보진영에서도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탈북자 문제를 건드린 건 절묘하기까지 하다. 실제 이유야 어찌됐든 안철수식 정치행보로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공천으로 이전투구하는 와중의 행보라 더 참신해 보인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안철수를 볼 때면 그가 정말 정치를 할지 말지 더 궁금해진다. 외국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다. 옆방에서 그를 기다리는 여인과 새로 사랑을 시작할지, 아니면 호텔 방을 나가 기차역으로 떠날지를 결정해야 한다. 시간을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영화는 궁금증만 남긴 채 끝이 난다. ‘정치를 카피하다’라는 영화가 있다면, 안철수는 지금 그 거울 앞에 서 있다.

안철수의 행보가 새삼스런 이유는 정치권의 과거회귀적 행태 때문이다. 여야의 공천 과정을 보면 친박·친노라는 과거 프레임에 발이 묶여 있다. 올해 총선·대선이 시대적 전환기라고들 하는데, 정작 공천은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갔다. 99%의 시대, 경제민주화의 시대에 걸맞은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라는 오너가 있는 새누리당이 비교적 질서있게 내용 없는 공천을 잘 포장했다면, 민주당은 ‘초보운전’ 지도부답게 산만하게 헝클어져 뒤죽박죽이 됐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민주당 공천을 보면서, 이른바 ‘친노’, ‘386’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이끌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개개인의 정치적 자질이나 헌신성의 문제가 아니라, 2013년 새 체제를 이끌기엔 과거 세월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 친박·친노의 프레임으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문재인 이사장이 친노를 내세워 야권의 대선주자가 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의 성실성, 진솔함, 기성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담백함, 이런 것들이 국민에게 어필한 것이다. 친노든 386이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안철수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가 대선에 나선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특유의 행보를 관둘 것 같지도 않다. 지난해 연말 이후 별다른 정치세력화 움직임이 없다는 점에서 외견상 권력의지가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단 출범이나 탈북자 농성장 방문을 보면 그렇다고 아예 사회적 행보를 접을 것 같지도 않다. 그가 의미있는 사회적 활동과 본격적인 대선 행보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친박·친노·386이 과거회귀적 코드라면, 안철수는 지금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미래지향적 코드다. 총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고통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안철수로 대표되는 시대정신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다. 변변한 일자리 하나 만들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의무이기도 하다. 안철수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소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여지껏 그래 왔듯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친노와 386 역시 이 시대적 과제에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에서 중년의 남녀는 한나절의 짧은 만남 속에서 사랑의 시작과 끝을 압축적으로 ‘카피’해 보인다. 그 뒤 여인은 실제 현실 속의 사랑을 희망했고, 남자는 거울 앞에 섰다. 애틋한 사랑도 언젠간 쓸쓸한 결말을 맺곤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여서 화려한 끝만 있는 건 아니다. 안철수식 정치를 카피한다면 그 끝은 무엇일까. 사랑도 그렇지만, 정치도 때론 불가항력적인 운명처럼 다가온다. 사랑을 시작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백기철 정치부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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