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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마거릿 대처 / 고명섭

등록 2012-03-06 19:11

위대한 악녀 마거릿 대처의 삶을 그린 영화 <철의 여인>은 주인공의 위대함도 악녀다움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여인의 심장을 철로 바꾼 사건들을 탐조하기에는 영화의 호흡이 너무 가쁘다. 몇 장의 스틸 사진 같은 장면으로 아버지와 둘째딸의 숭배-애착 관계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고음의 쇳소리를 내는 촌스러운 부잣집 마님이 요제프 괴벨스의 목소리에 육박하는 무게와 거기에 걸맞은 제스처를 얻기까지 되풀이하여 연기 지도를 받는 과정을 압축한 짧은 시퀀스는 이 영화의 성취다. 시대의 흐름을 바꾼 한 여성의 삶이 실상 신념에 찬 기만극이었을 수도 있음을 이 시퀀스는 암시한다. 총리가 된 대처는 이런 말을 했다. “내 모든 신념은 아버지가 심어주었다.” 완고한 보수주의자가 물려준 그 신념에는 선악 이분법도 있었다.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은 선과 악의 투쟁이 있기 때문이다.” 대처에게 악의 편에 있는 것은 사회주의, 지식인, 노조, 복지였다.

대처의 호소력 넘치는 저음이 새된 고음을 뒤집어 놓은 것이었듯이, 대처라는 이름과 함께 시대를 규정하는 말이 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를 뒤집어놓은 것, 바꿔 말해 자유주의 정치이념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내면은 보수주의, 그것도 그악한 보수주의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있는 것은 개인과 가족뿐이다.” 대처는 포클랜드의 아르헨티나 군함에 폭격을 하듯 탄광노동자들에게 진압봉을 휘둘렀다. 영국병을 적발한 의사는 그 병을 고친다며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의탁하는 병원을 깨부수었다. 사회가 깨지면 개인도 가족도 깨진다.

<철의 여인>은 대처의 대처다움이 완성되는 지점에서, 다시 말해 우아한 헤어스타일이 방사하는 카리스마의 절정, 총리로서 위세의 극점에서 주인공의 몰락이 들이닥침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기괴한 보수주의도 똑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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