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총선을 앞둔 시점에 장병들한테
비판적인 언론을 차단하는 것은
군인복무규율에도 어긋난다
비판적인 언론을 차단하는 것은
군인복무규율에도 어긋난다
독일의 군인은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게 허용된다. 군인은 일정한 절차를 밟아서 연방 하원의원, 주 의원, 유럽의회 의원에 출마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활동은 근무시간 중에 할 수 없고 자유시간에 해야 한다. 군인이 정치 집회나 행사에 제복을 입고 참가해서는 안 된다. 상관은 하급자의 정치적 견해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독일에서 군인의 지위를 규정한 군인법의 주요 내용이다. 이 법은 군인을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 이해한다. 군인이 제복을 입었더라도 시민과 동일한 공민권을 지닌다는 뜻이다. 군사적 직무 때문에 불가피하게 권리를 제약하려면 그 범위를 법률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개별 장병의 시민적 기본권을 보장하되, 군이 집단으로서 부당하게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하겠다는 제도다.
이런 개념은 유럽 여러 나라에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독일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전쟁을 도발한 나치스 군대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군대를 개혁하고자 제도를 좀더 정교하게 연구했다. 우리는 군부 쿠데타와 군의 선거개입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나라의 발전이 정체된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날카롭게 경계해야 마땅하다.
얼마 전 일부 군부대에서 ‘나는 꼼수다’ 등 10개 안팎의 앱과 사이트를 ‘정부 비방’ 또는 ‘종북’으로 규정하고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 비방이니 종북이니를 군이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것부터가 온당하지 않다. 그런데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특정 앱에서 국군 통수권자나 정부를 비난하거나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정신전력 훼손 여지가 많아 해당 지휘관 조치는 타당했다”며 이 행동을 정당화하고 나섰다.
나꼼수 등은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다. 세상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와 우호적인 매체가 두루 있다. 군 지침대로라면 장병들은 비판적인 매체는 빼고 우호적인 매체에만 접근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장병들의 눈과 귀를 어느 한쪽으로만 유도하려는 이유가 뭔가? 장병들이 교양과 지식을 고루 얻지 못해 무식해지도록 만들자는 건가? 특히 지금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결국은 장병들이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야당이 아니라 여당 후보한테 투표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군인은 군인복무규율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대통령령인 군인복무규율은 18조 4항에서 ‘각종 투표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도록 영향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최근 군 지휘부의 움직임은 군인복무규율 위반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부당한 정치개입이며,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벗어난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1992년 4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는 군이 같은 해 3월24일 치러진 총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내비치는 ‘건강한 부대 관리’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그 문서는 총선 기간인 3월10일부터 24일까지 병사들의 동요를 방지한다는 목표 아래 텔레비전 저녁뉴스 시청을 통제하도록 했다. 대신에 전우신문 윤독회, 정훈 비디오 상영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당시 육군 보병소대장인 이지문 중위는 “여당이 지지를 받아 정치 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정신교육이 부대별로 실시됐다고 폭로했다. 그때 일은 그때 일이고 군의 정치개입은 더이상 없을 줄로 여겼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총선 이후 구성될 19대 국회는 이 사건에 대해 우선적으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 군 지휘부의 일탈 행위를 밝혀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이 글을 통해 김관진 장관의 정치개입 혐의를 고발해둔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cspcsp@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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