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여성 공천 확대가 마지못해 하는
숙제나 필수과목이 되어선 곤란하다
승리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숙제나 필수과목이 되어선 곤란하다
승리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외견상 한국 정치는 본격적인 여성정치 시대로 접어들었다. 집권 여당의 확실한 대선 주자가 여성이고, 이에 맞서는 제1야당의 대표 역시 여성이니 말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두고는 여성 대표성을 갖는 정치인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버지 박정희가 있어서 오늘의 박근혜가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여야의 여성 대표 체제 역시 여성 파워의 신장에서 비롯됐다기보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민주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15% 룰’ 논란은 한국 여성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10%대에 불과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늘리기 위해 지역구의 15%를 여성으로 공천한다는 것인데, 남성 후보들은 깜도 안 되는 여성들이 ‘15% 완장’을 차고 거저먹으려 든다고 반발한다. 총선·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지상 과제에 비하면 여권 신장은 다섯 손가락 밖으로 벗어나는 하위 과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80년대 초반 학생운동권에서 여성문제를 꺼내면 군사독재 타도하자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면박 주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논리가 운동권 스스로를 좀먹었다는 인식이 퍼졌다. 운동권 내의 남성우월주의, 마초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여성이야말로 모순투성이 한국 사회의 최대 피해자라는 관점이 확립되면서 여성운동이 크게 활성화됐다.
최근의 <나꼼수> 비키니 발언 논란은 여성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여성들이 상처받고 실망했다면 문제일 수밖에 없다.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의 ‘자연산’ 발언에서 보듯 정치권에선 아직도 마초적 관행이 팽배하다. 진보진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많은 여성을 실망시켰다면 <나꼼수>가 그에 걸맞게 뼈를 깎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 길이 자신의 역할을 더 잘해낼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민주통합당에 한명숙 대표를 필두로 이화여대 출신 여성이 많다는 데서 불거진 ‘이대 마피아’ 논란은 정치권에서 여전히 약자인 여성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잘못된 프레임이었던 것 같다. 이대를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보다는 기여한 바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만일 ‘이대 마피아’ 같은 게 있다면, 잘난 여자들의 이너서클이 아니라 비정규직·가사노동에 고통받는 99% 여성들을 대변하는 일에 앞장서길 바란다.
여성 공천 15% 할당 문제는 단순히 여성의 진출을 부양하는 인위적 잣대의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의 총선 전략이자 승부처로 삼을 만하다. 여성 공천 확대가 마지못해 하는 무슨 숙제나 필수과목이 되어선 곤란하다. 유권자들까지 마지못해 여성을 찍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2009년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는 젊은 ‘여성 자객’ 후보들을 대거 자민당 거물 지역에 공천해 큰 승리를 거머쥐었다. 여성 공천에도 승리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이 있다면 지역구의 15%가 아니라 30%, 나아가 50%까지 여성을 공천해도 무방하다. 이정희, 심상정 같은 실력있는 ‘숨은 진주’들을 백방으로 찾고, 사람이 없으면 ‘십고초려’라도 해야 한다. 99% 여성을 직접 대표할 이들도 널리 찾아보라. 경우에 따라선 15% 채우기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히 옥석을 가릴 필요도 있다. 국민들은 남성 위주의 구태정치에 염증이 날 대로 나 있다. 경쟁력 있는 여성 신인들을 대거 발굴해 융단폭격 하듯 내보낸다면 4월 총선에서 여성정치 혁명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백기철 정치부장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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