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연구기획조정실장
겉포장만 보고 준비되지 않은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정치권의 속된 발상 유감이다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정치권의 속된 발상 유감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22살부터 26살까지 영국 보수당 정책연구소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 뒤 존 메이저 총리의 비서관으로 의회 경력을 쌓았다. 31살 때 총선에 처음 출마해 낙선했다가 35살에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39살에 보수당 당수가 되었고, 2010년 43살로 영국 최연소 총리에 오른다. 영국 제3당인 자유당 당수 닉 클레그는 32살에 유럽의회 의원이 되었고, 42살에 부총리가 되었다. 35살에 주 상원의원, 47살에 대통령이 된 미국 버락 오바마를 비롯해 젊은 지도자가 정치 전면에 떠오르는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무엇보다 젊은 지도자라고 해서 공무를 처리하는 데 미숙하더라는 이야기는 외국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렵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은 완전히 딴판이다. 그는 거의 매일 언론에 가십거리를 제공하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한나라당 ‘디도스 공격 국민검증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그는 나꼼수의 김어준씨를 검증위원으로 영입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상대방의 냉소에 부닥쳤다. 철거민 단체를 “미친놈들”이라고 비하했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 박근혜 의원을 겨냥해 “전직 대통령 딸로서 의혹을 씻어야 한다”고 ‘지르는’ 듯하더니, 무슨 의혹을 어떻게 씻자는 건지 후속 문제제기는 없다. 실없는 이야기를 툭하면 내뱉고 있는 것이다. 집권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책임이 막중한 비대위원이 이래도 되는 건지 의아할 정도다.
이 위원은 과학고와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스마트폰 앱을 제작하는 종업원 5명 규모의 정보통신업체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다. 그가 이끄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은 괜찮은 무료과외 봉사단체다. 하지만 이 위원한테 디도스 검증위 책임자를 맡긴 것은 정말 심했다. 디도스 공격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선거권 행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중대 범죄다. 여권 핵심부 어디쯤에 연루자가 숨어 있을지 모르겠으나 누구든 필사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 할 것이다. 무거운 처벌이 따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박근혜 위원장이 ‘내부’ 용의자를 불러모아 ‘친국’하여도 진상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약간의 정보통신 기술을 안다고 해낼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니다. 그런 일을 당내 사정과 권력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26살 청년에게 맡긴 한나라당이나, 맡긴다고 뭣도 모르면서 덥석 받아들인 이 비대위원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젊은 지도자가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배경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중등학교에서부터 ‘젊은 보수주의자’ ‘젊은 진보주의자’ 등의 이름을 붙인 정치 동아리가 활발하다. 여기서 훈련을 거친 덕택에 비록 나이가 젊어도 말의 책임성을 의심받는 일은 좀처럼 없다. 한마디로 준비를 시킨다.
우리는 전혀 다르다. 화려한 이력에만 눈길을 줄 따름이지, 그 젊은이가 자기 세대의 고민을 대변할 능력과 감성을 갖췄는지를 검증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26살 하버드대 출신’을 활용한다는 극단적 이미지 정치는 그런 속된 발상의 결과물이다.
사회연결망서비스(에스엔에스)가 활성화한 이래 20~30대의 고민과 감성을 반영하는 게 정치에 화급한 과제가 됐다. 하지만 ‘이준석 사례’처럼 해갖고는 본인을 웃음거리로 만들 염려가 많고, 젊은층의 고민을 정치에 반영하는 데도 역효과가 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이준석 위원의 경우를 비난하면서 총선 때 20~30대 4명을 당선권 비례대표 후보에 공천하겠다는 청년층 공략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도 고민이 농익은 느낌은 적다.
박창식 논설위원·연구기획조정실장 cspcsp@hani.co.kr
이준석 비대위원(26·클라세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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