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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 대왕대비의 귀환? / 박창식

등록 2011-12-08 19:13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박근혜 외에 대안이 없다고
한나라당이 머리를 조아릴수록
시민들은 더 멀어져갈 것이다
조선 최고의 개혁군주인 정조가 승하한 뒤의 일이다. 정조 시절 뒷방에서 절치부심하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노론벽파의 거두인 심환지 등과 손을 잡고 권력 전면에 나선다. 예순대왕대비 김씨(정순왕후)는 10살 순조를 왕좌에 앉혀놓고 전교를 내린다. 전교는 어명으로 바뀌어 즉각 실천된다. 노론벽파가 천주교도를 때려잡는 일이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천주교도 탄압은 야당과 지식인 탄압 성격이 짙었다.

예순대왕대비에 이어 명경대왕대비 김씨(순조의 정비인 순원왕후)가 헌종, 철종 대의 권력을 휘두른다. 철종, 고종 대에는 효유대왕대비 조씨(익종의 정비 신정왕후)가 권력 전면에 떠올랐다. 대왕대비의 시대는 3대 60년에 걸친 세도정치의 시대이기도 했다. 조선을 부흥시킨 정조의 개혁정책들은 차례로 무력화됐다. 결국 조선은 망했다.

박근혜 의원이 조만간 한나라당 당권을 공식 접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난파할 지경이라 박 의원 아니면 통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솔직히 걱정된다. 그의 당권 접수를 계기로 대왕대비 시대를 방불케 하는 퇴영적 정치문화가 더욱 기승을 부릴까봐서이다.

한나라당은 실질적으로 박근혜당이 된 지가 제법 됐다. 그런데 그 정당의 권력 작동 방식이 특별하다. 박 의원은 중요한 현안이 있어도 의원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당 사람들이 애를 태우다 침이 말라붙게 되어서야 마지못한 듯 한 말씀을 내려준다. 친박 의원들은 쌍수를 들어 ‘교지’를 관철하겠다고 달려든다. 그것으로 모든 논의는 끝이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권과 대권 분리를 유지하라”(지난 5월19일), “박지만이 (저축은행 로비 연루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 끝난 거다”(6월7일), “지명직 최고위원은 호남과 충청에서 각각 1명씩 임명하라”(8월9일), “취업활동수당 예산은 꼭 반영해라”(11월21일, 국회 상임위 차원의 예산 심의는 이미 끝난 시점), “쇄신 연찬회는 여러분들끼리 해라”(11월29일)….

한동안 박 의원이 복지를 챙긴다고 하기에 좋게 봐주려 했다. 요즘에는 그것도 아니다. 가령 홍준표 대표가 얼마 전 쇄신파 요구를 받아들여 이명박 대통령한테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박 의원이 측근인 최경환 의원을 통해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증세에 반대하면 복지는 무슨 돈으로 하나.

박 의원은 친박 의원들에게 전화할 때도 발신번호 표시 제한을 한다고 한다. 나 같으면 상대 번호가 안 뜨면 ‘지가 뭔데’ 싶고 기분 나쁘다. 안 받아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친박 의원들은 행사에 참석중이다가도 휴대전화에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오면 ‘알아채고’ 황급히 받는다고 한다.(<조선닷컴> 보도) 계보 의원들한테도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뜻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관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박 의원은 요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교수한테 뒤지고 있다. 박 의원과 한나라당이 전근대적 정치문화에 갇혀 있는 것도 원인일 터이다. 박 의원한테서는 박정희·육영수 식의 ‘옛날 아우라’가 느껴진다. 한나라당 친박 의원들은 몇 술 더 뜬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박근혜 외에 대안이 없다고 머리를 조아릴수록, 그리고 보수언론들이 “박근혜, 더 이상 뭘 망설이는가”라며 당권을 접수하라고 아우성을 쳐 댈수록, 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멀어져 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대왕대비의 시대가 아닌 까닭에….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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