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 칼럼니스트
무한경쟁 자본과 금융체제는
2500년 전 공자의 시대보다
더 춘추전국적이지 않은가
2500년 전 공자의 시대보다
더 춘추전국적이지 않은가
어색하다. 공자왈 맹자왈에 평생 시큰둥했던 터에 공맹 유적지 답사여행에 끼어들다니. 비용은 패키지 여행치고는 좀 부담스러운 정도. 그래도 강제 쇼핑이나 옵션 관광이 없다는 설명에 확 끌렸다.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는 까닭에 입맛 걱정은 없다. 일행은 37명. 12살 초등생부터 80살 어르신까지 남녀노소가 고루 섞인 그룹이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도착해 공자의 세계로 진입하는 버스 안, 전국을 망라하는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부자유친팀을 포함해 가족여행도 여럿이다. 공자님의 묘소인 공림을 참배하는 게 선대들로부터의 오랜 꿈이었다는 최 선생은 거의 성지순례의 열정을 뿜어낸다. 누군가 우울한 정치·사회 현실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다. 누군가는 자본주의가 만든 직업의 위계 속 자신의 존재 의미를 오래된 지혜로부터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갑자기 버스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한다. 뜨겁다. 이게 도대체 뭐지?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왠지 관광객답지 않다.
태산에 오르고, 전설인 줄만 알았던 강태공 사당에 들른 후 이동하는 버스 속, 일행 중 신학자 한 분이 공자에 대한 강연을 시작하신다. 이런 자원활동, 우리에겐 완전 횡재다. 기술과 과학의 과잉 시대에 왜 인간의 무늬를 넣는 학문이 필요한지, <논어> <맹자>로부터 서양 신학과 철학까지를 종횡무진하는 연사.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치인이란 지배하고 군림하는 게 아니라 먼저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이란다. 인(仁)이란 결국 사람다움이라는 말이 따뜻하게 와닿는다. 2500년 전 제자백가를 향해 열려 있는 신학의 관점이 신선하다. 더러는 졸지만 객석의 반응도 뜨겁다. 이쯤 되면 가히 향연이다.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의 중심지 취푸, 달빛 아래 몇몇이 함께 동네를 걸어본다. 일 년 중 달빛이 가장 푸를 때가 늦가을 아닌가. 공자는 이미 그곳에 없다. 어쩌면 나는 이번 여행으로 평생 끼고 있던 페미니즘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그를 만나고 싶었을까. 아녀자와 소인배를 한 두름에 묶어 교육의 대상에서 배제했던 공자. 그의 생각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2500년 전의 사상을 향해 오늘의 가치나 의식으로 시비를 거는 건 옳지도, 타당하지도 않을 터.
그가 살면서 드나들었다는 집 대문을 기웃거려 보고, 묘소에 성묘를 한다. 묘 바로 옆에 제자 자공이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거처했던 작은 집까지 본다. 비로소 그가 화석화된 성인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음을 실감한다. 우리를 동아시아인으로 묶어놓은 공자. 그는 전쟁과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에 인과 의를 통치 근본으로 세우려 목이 터져라 외쳤고 정치가로서 실패했다. 지금의 무한경쟁 자본과 금융체제는 2500년 전보다 더 춘추전국적이지 않은가.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공자의 시대만큼이나 지금 여기 절박하다.
결국 우리는 나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나를 알고, 인간을 알고, 관계의 세계 속 인간의 길을 물으려 길 떠난 사람들이다. 우리는 안다. 더 많은 소유가, 더 많은 소비가 삶의 목표일 수 없음을. 50 이후 비록 천명은 알지 못하더라도 사람의 향기를 갖고 싶은, 수줍은 꿈이 내게, 우리에게 있다. 아직도 멀게만 보이는 대동세상은 일개 민간인들인 우리가 포기하지 않을 때, 서로 의지하고 믿어줄 때만 갈 수 있는 나라다. 그때까지 절대 절망하지 않기다. 실천은 각자의 몫이고 모두의 숙제다. 공자를 찾아 나선 길에 만난 뜻밖의 로드스쿨, 그 유쾌한 여정을 함께한 길벗 모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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