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의 상용 건물은 전, 당, 합, 각 등 4가지로 격을 분류했다. 임금과 왕비가 기거하거나 근무하는 곳이 전이다. 경복궁 근정전, 교태전이 대표적이다. 다음은 당으로 왕자들의 공간이다. 세번째인 합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후궁 한 사람 정도만 이용했다. 각은 신하들의 업무공간으로 격이 가장 낮았다. 장영실이 천문을 연구하던 경복궁의 흠경각이 있다. 문화재 전문가인 최연 불교문화연구원장은 “의전용어로서 각하란 말은 전하, 당하, 합하보다 격이 훨씬 떨어진다”며 “권위주의 시절에 경칭이라고 대통령 각하를 쓴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1공화국은 각하의 전성시대였다. 이승만 대통령뿐 아니라 부통령, 심지어 장군한테까지 각하를 남발했다. 보다못해 인촌 김성수가 부통령직을 사퇴하면서 각하 호칭 폐지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에선 대통령이 각하 호칭을 독점했다. 1979년 10·26 사건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을 두고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라고 외치며 방아쇠를 당길 때도 ‘각하’를 불렀다. 각하 호칭은 노태우 정부 때 “대통령님”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쓰이던 것을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없앴다. 당시 인수위 간사를 지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권위주의 청산을 주로 고려했고, 그 유래도 부적절하다는 점은 당시엔 몰랐다”고 뒷날 술회했다.
그런데 ‘이명박 청와대’에서 대통령 각하가 부활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이 슬금슬금 쓰기 시작하더니 엊그제 김인종 전 경호처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번 사저(내곡동 땅)는 ‘각하’ 개인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잔재이고 격에도 맞지 않는 말을 굳이 되살리는 까닭을 알 수 없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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