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비록 통합의 규모가 작더라도
진보정당이 친구가 적다는 느낌을
불식한다면 그건 성과다
진보정당이 친구가 적다는 느낌을
불식한다면 그건 성과다
비록 작은 규모로나마 진보정당 통합이 곧 이뤄질 듯하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출신의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과 조승수 의원 등을 주축으로 한 통합연대 등 세 정파가 합칠 것이라고 한다. 통합연대가 합류하면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상처를 일부나마 씻어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좀더 눈에 띄는 것은 참여당의 합세다. 참여당은 4·27 재보궐선거 패배 뒤부터 진보통합의 문을 두드렸다. 독자 생존이 쉽지 않고 민주당으로 흡수당하는 것은 한사코 싫어서 다른 활로를 찾아나선 셈이다. 정책과 노선을 발전시켜나가는 차원의 발전적 모색이라기보다 궁여지책 성격이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세계 진보정당의 역사를 보면 자유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정당이 흔히 협력한다. 영국의 초기 노동당과 자유당의 연합이 그렇고 브라질의 집권 노동자당도 많은 정파들의 연합체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의 최규엽 소장이 쓴 논문을 보면, 진보정당 계보가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여하고자 1948년 평양에 모인 56개 정당사회단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조봉암의 진보당, 4·19 뒤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혁신당 등을 거친다. 2000년 1월30일 민주노총과 전국빈민연합, 국민승리21 계열 등을 주축으로 지금의 민주노동당을 만들게 된다. 즉 노동·민중운동 정체성이 희박한 정파가 진보정당에 가세한 예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진보정치 토양이 그만큼 척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무엇보다 집권세력이 진보정당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요즘은 별로 생기는 것은 없고 죽어라고 몸빵만 하는 정당으로 돼 있으니 누가 선뜻 가까이하고 싶겠는가. 진보정당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을 것 같은, 왠지 강퍅한 분위기가 감도는 데는 까닭이 있다. 이번에 진보통합이 성사되어 참여당이 합류하게 된다면, 이런 측면도 고려해줄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정파와 손을 잡으니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너무 야박하게 깎아내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비록 통합 규모는 작지만 진보정당이 친구가 적다는 느낌을 불식한다면 그것은 성과라고 평가하고 싶다.
동지는 말 그대로 뜻이 같아야 하지만, 친구는 좀 생각이 달라도 사귈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때로는 동지보다 친구와 어울리는 게 더 흥미진진한 법이다. 사실 우리나라 진보정당은 관전자들한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 못한 지가 제법 됐다. 진보통합이 성사된다면 이정희, 강기갑,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이 함께 무대에 올라 툭툭 치고받으면서 말솜씨를 겨루는 모습도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
지금은 급진적이고 발랄한 개인들이 수직적 위계 조직이 아니라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시대다. 시민들이 자기 방식으로 의제를 만들고 소통하며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시대다. 진보정당도 통합을 계기로 문화적 감수성을 바꿔나가는 게 필요하다. 참여당과 통합연대 당원을 합쳐도 1만명이 안 된다고 한다. 크게 내세울 게 많은 집단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젊은이 비중이 높고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편이라고 한다. 진보정당 사람들이 새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떤 자극을 받을지도 궁금하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참여당의 통합 논의는 몇 달이 되도록 큰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각 정파가 중간 우두머리 수준에서 쉬쉬하며 협상을 이끌어온 탓도 클 것이다. 명색이 진성당원제를 채택한 정당들에서 당원들이 당의 진로에 관한 논의를 잘 모르고, 대중적인 토론도 활발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다. 통합이 성사되면 이런 침묵의 문화를 제일 먼저 없애야 한다.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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