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그것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해야만 했다. 마음속으로 이 맹세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우리 민족에게 강제로 외우게 했던 ‘황국신민 서사’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서부터다. 요즘 학생들은 막연한 ‘조국과 민족’이 아니라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충성 맹세를 한다. 정부가 지난 2007년 시대 흐름에 맞춰 문안을 바꾼 결과다.
미국 국민도 성조기가 걸리는 공식행사 등에서 ‘충성의 맹세’를 한다.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보장하는 하나의 공화국’을 위해 맹세한다. 하지만 공평한 자유와 정의는 현실로 구현되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 역사에선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놓고 자본 권력과 시민 권력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미국에서 자유와 정의의 가치가 자본 권력 쪽으로 확 쏠린 것은 1980년대 레이건 정권 때다. 권력이 대거 시장으로 넘어가고 사적 소유권의 범위는 대폭 넓어졌다. 눈에 보이는 소유물은 물론이고 ‘투자계약에 따른 미래 기대수익’ 같은 무형의 자산까지도 국가의 보상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은 이처럼 자국에서 확장시킨 자본의 권리를 다른 국가와의 조약으로 내밀었다. 그 첫번째 성과가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11장의 투자자 보호 조항, 즉 ‘나프타식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이보다 더 강화된 ‘나프타 플러스’로 불린다. 미국은 이 제도를 자국 기업과 투자자 권리 보호를 위한 ‘방패’로 활용하지만, 협정 상대국한테는 주권까지 위협하는 ‘창’으로 둔갑해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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