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동갑의 라이벌 빌 게이츠를 혹평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유전자에는 인간애와 인문학이 없다”며 “빌이 젊었을 때 마리화나나 히피문화에 빠졌더라면 좀더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최근 발간된 <스티브 잡스>에 실려 있다. 잡스는 젊은 시절 경험한 환각제(LSD)에 대해서도 “엘에스디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의 하나”라며 자신을 깨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히피였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애플 광고대로 살았다.
1960~70년대 반전, 평화, 자유, 사랑을 추구한 히피 중엔 회사를 세운 이들도 있다. ‘평화, 사랑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내건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의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는 자연주의 화장품 회사 보디숍의 애니타 로딕, “처녀 같은 미지의 영역을 찾아 발전시키는 게 꿈”이라는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등이 ‘히피 자본가’로 불린다. 벤앤제리는 친환경 재료를 고집하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기금으로 조성해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 등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했다. 미국 국방예산 1%를 평화유지 활동에 쓰자는 제안도 했다. 보디숍은 동물실험 반대, 환경보호 운동 등 기업활동을 사회운동과 연계시켰다. 파격 마케팅으로 즐거움과 윤리경영을 추구하는 브랜슨은 내년엔 스스로 우주여행에 나서며, 이를 새로운 사업분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록밴드 유투(U2)의 보노는 “21세기를 창조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마리화나를 즐기고 긴 머리에 샌들을 신고 다니던 히피들이었다. 그들은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제2의 잡스’는 길러지기보다 자유를 토양으로 자라날 것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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