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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궤변 / 박창식

등록 2011-10-31 20:02

공적인 말하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대 그리스 이래의 논쟁거리다.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현상계에서는 지식(앎)보다는 의견이 더 지배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수사술의 막강한 힘을 강조하고, ‘능란한 말하기’를 대중들에게 돈 받고 가르쳤다.

반면에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들은 ‘진실에 기초한 말하기’를 제시했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주장과 달리 수사술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사술은 대중의 이익과 행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사로잡는 데만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순수의 가면을 쓴 아첨술이라고 봤다.

박기철 교수(경성대)는 지난해 쓴 논문 ‘바람직한 토론문화를 위한 토론대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요즘 성행하는 고교생 토론대회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최 쪽은 ‘놀부는 현대사회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다’와 같은 논제를 던진다. 학생들은 본연의 자기 생각과 관계없이 추첨에 따라 찬반으로 갈라선 다음, 갖가지 근거를 갖다 붙이면서 격렬한 논전을 벌인다. 이렇게 해선 올바른 대화의 방법을 배우기 어렵다. 말솜씨만 현란한 궤변가를 길러내는 꼴이 될 수가 있다. 공적 말하기에 관한 윤리적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데서 빚어지는 폐해의 한 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진 뒤 한나라당 사람들이 알쏭달쏭한 정치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그는 ‘당 대표인 것도 아니고 대표가 아닌 것도 아닌지…’ 모르겠다. 박근혜 의원은 분명히 여당이 완패한 결과를 두고 “정치권 전체가 크게 반성해야 할…국민들의 심판”이라고 초점을 흐려 놓았다. 정치적 책임을 피해 보려는 생각이 앞선 탓일 텐데, 아무튼 ‘진실에 기초한 말하기’로 보긴 어렵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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