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 사회2부 선임기자
농협에는 공공연한
특급비밀이 있다
4조원에 이르는
‘상호지원자금’이다
특급비밀이 있다
4조원에 이르는
‘상호지원자금’이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은?
케이비금융 아니면 우리금융, 둘 다 아니다. 공식 4위인 농협의 자산규모가 훨씬 더 크다. 전국 읍·면 회원조합의 상호금융까지 합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농협 금융의 총자산이 400조원에 이른다. 케이비와 우리금융의 총자산은 320조원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농민들의 협동조합에서 금융사업을 크게 벌인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크레디아그리콜, 네덜란드에서는 라보방크가 농업에서 출발한 협동조합이지만, 각각 국내 은행 서열 1위에 올라 있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은행의 비중이 전체 은행의 20%를 넘어선다. 중소 가족농의 농업소득을 뒷받침하자면 금융의 구실이 꼭 필요한 까닭이다.
우리 농협은 덩치도 크지만, 참 난해한 조직이다. 농민들이 세운 협동조합인가 하면, 국가조직 같고, 시중은행과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청와대나 농식품부에서는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농협 직원들의 다수는 은행원의 직업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에서는 “공법인성과 사법인성을 함께 구비한 중간적 영역의 특수법인”이라고 규정했다.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농협 조직의 잘잘못이 무엇인지, 건강한 외부감시와 대안제시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정작 주인인 농민들은 농협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뻔한 질문이겠지만, 정답은 ‘그들만의 리그’이다. 농협 조직은 농민조합원들이 읍·면의 1171개 회원조합을 세우고, 이들 회원조합의 출자로 다시 농협중앙회를 설립한 3단계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시골의 조합원들에게 농협중앙회는 아득히 멀고 높은 곳에 있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회원조합장들이 주인 행세를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다. 농협은 소수 거물급 조합장들과 중앙회 직원들의 좋은 직장, 정부 공무원들의 요긴한 통제장치로 전락했다.
농협에는 공공연한 특급비밀이 하나 있다. 규모가 4조원에 이르는 ‘조합상호지원자금’으로, 중앙회장의 ‘통치자금’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국의 회원조합들에 무이자로 공급하는데, 1000개가 넘는 회원조합마다 평균 40억원 가까운 금액을 해마다 수혈해 준다. 이 자금의 공급이 끊어지면 그날로 무너질 회원조합이 허다하고, 그래서 읍·면 조합장의 능력은 이 자금을 얼마나 잘 따오느냐로 평가되곤 한다.
농산물 사업 잘한 조합장이 떨어지고 중앙회 로비 잘해야 선거에서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농협 회장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의원 조합장들이 더 많은 자금을 공급받는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의 조합들에 자금을 더 주라고 농협 쪽에 부탁하지 않을 수 없다. 4조원의 실탄이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는 동력인 것이다. 조합상호지원자금의 존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평소에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두었다가 위기탈출과 신규투자를 지원하자는 좋은 취지이다. 문제는 쓰임새와 투명성이다. 지금처럼 특급비밀로 금기시해서는 금세 고황에 병이 들고 말 것이다.
‘농협 개혁’은 뚜껑을 열어갈수록, 걱정이 커진다. 이래서 뭐가 달라지나 싶다.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떨어져나가면, 농민조합원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정부는 자본금 지원을 구실로 농협 통제를 강화하고, 농협 회장은 다가올 연임 선거 승리에 골몰해 있다.
협동조합 없이 농민이 잘사는 선진국은 보지 못했다. 썩어도 준치고, 미워도 농협이다. 진정한 농협 개혁의 기운이 모아지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우선 조합장들의 도연합회를 조직하자. 그리고 조합상호지원자금 공개운동을 시작해보자. koala5@hani.co.kr
협동조합 없이 농민이 잘사는 선진국은 보지 못했다. 썩어도 준치고, 미워도 농협이다. 진정한 농협 개혁의 기운이 모아지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우선 조합장들의 도연합회를 조직하자. 그리고 조합상호지원자금 공개운동을 시작해보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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