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여야 대선주자들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할 개헌 일정·조건 등을
대선 전 합의해 제시하는 게 좋겠다
폐해를 극복할 개헌 일정·조건 등을
대선 전 합의해 제시하는 게 좋겠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5년 단임 대통령의 말년이 꾀죄죄해지는 현실은 문제다. 임기가 1년 반가량이나 남은 대통령을 ‘식물 대통령’ 취급하게 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얼마 전 김문수 경기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떨어졌고, 이명박 대통령은 굉장히 징조가 좋지 않다”고 한 것은 이 대통령의 요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무얼 해도 하는 것 같지 않고, 뭐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이 대통령까지 다섯 대통령이 그런 처지에 빠졌다. 정도만 다를 뿐 예외가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은 이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경제라도 좀 잘해달라고 한 것인데, 살기가 더 팍팍해졌으니 다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가뜩이나 취약한 단임 대통령 처지에 중산층마저 돌아섰고, 측근들은 하나둘씩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 위태로운 신세가 됐다.
청와대 사람들은 이 대통령만큼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 없다고 항변한다. 대통령이란 게 원래 그런 자리다. 역대 대통령 중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는 없다. 리더십 부재가 근본 요인이긴 하지만, 정치 환경과 제도가 대통령을 망가뜨리는 측면이 분명 있다. 대통령 본인이 자기는 다르다고 우쭐대면 더 악몽 같은 데자뷔를 맞을 뿐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뭔가 반전의 기회를 잡고 싶어할 것이다. 4대강도 이제 완공 세리머니만 남았고, 며칠 있으면 미국 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되고 상하 양원 합동총회 연설도 한다. 남북정상회담 카드도 있다. 하지만 레임덕 대통령의 반전 카드는 대개 반짝 효과에 그치고 만다. 임기 말 대통령에겐 이를 상쇄할 악재들이 너무 많다.
이 대통령이 빠져들고 있는 레임덕 상황은 지금의 여야 대선주자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이명박·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불리한 대선판을 흔들려는 꼼수로 규정했다. 올해 초 이 대통령이 이재오 전 특임장관을 앞세워 추진한 권력분산형 개헌은 좀더 속보였다. 30%를 웃도는 지지율을 확보한 여당 내 비주류 대선주자를 두고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 얘기를 꺼내는 순간 이미 개헌은 물건너간 것이었다.
다음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들은 개헌 문제에 대해 미리 공동의 해결책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여야 후보들은 모두 개헌을 공약했지만, 대선이 끝나자마자 개헌은 뜬구름 잡는 얘기가 돼버렸다. 대선 이후 개헌 추진 일정에 대해 아무런 합의가 없었던 탓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개헌 추진 일정과 조건을 합의해서 대선 전에 국민 앞에 제시하는 게 좋겠다. 어차피 다음 대통령이 임기 중 추진해야 할 과제라면, 미리부터 투명하게 일정을 제시해놓는 게 오해를 피할 수 있다. 대선 선거전이 달궈지기 전에, 여야 후보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여야의 유력 주자들이 뜻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 중에도 개헌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하며 시간을 낭비하면 정치권이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개헌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지리멸렬만으로도 정치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차차기 대선이 예정된 2017년이면 현행 헌법이 성립한 지 30년이 된다. 30년의 헌법적 결산을 정치권이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해 나가길 바란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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