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는 언어를 연구하는 학술단체로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길다고 한다. 이 학회의 모태는 주시경·김정진 등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다. 1921년 12월에 조선어학회로 발전했고 ‘한글맞춤법 통일안’ ‘표준어 사정’ ‘외래어 표기’ 등 국어의 여러 규칙을 정리했다.
일제는 1940년대에 민족 말살을 겨냥해 우리 말글 교육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한국말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서울의 정태진한테서 민족정신을 교육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그의 배후를 추적해 조선어학회가 조선말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음을 탐지했다. 경찰은 1942년 10월부터 33명의 우리 학자들을 잡아들여 모질게 고문하고 내란죄로 기소했다. 이윤재·한징 두 학자는 옥사했으며,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정태진 등 여럿이 옥고를 치렀다. 민족의 말글을 지키고자 이처럼 피나는 투쟁을 한 사례는 세계에 드물다.
요즘 영어 바람에 눌려 우리 말글이 위축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학 사회를 보면 영어 강의를 의무화하거나, 심지어 일부 대학 평가에선 영어가 아닌 우리글로 작성한 논문에 점수를 쳐주지 않기도 한다. 영어를 잘하는 국민과 영어를 하지 못하는 국민 사이에 장벽과 차별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라를 빼앗길 위협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한글학회(회장 김종택)가 서울 세종로 한 곳에 조선어학회 순국선열 추모탑을 세우자고 서울시에 제안하고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말글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움직임이다. 10·26 보궐선거를 통해 뽑힐 새 시장이 이 제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했으면 한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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