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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안철수 돌풍 닷새’가 남긴 것 / 박창식

등록 2011-09-06 19:11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안철수 돌풍은 기성 정치권의 혁신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안 교수도
좀더 훈련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접었다. 출마를 검토한다는 말 한마디로 선풍적인 지지 열기를 끌어모으고 기성 정당들을 무기력감에 빠뜨린 지 닷새 만이다. ‘안철수 돌풍’은 타성에 젖은 기성 정치권에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아울러 갑작스런 출마 시사에서 박원순 변호사와의 깜짝 단일화 과정이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안철수 바람의 동력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참신한 인물에 대한 대중의 기호, 선거 때면 으레 제3지대 후보가 나오도록 하는 정치심리학, 새로운 미디어의 활성화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번은 과거 박찬종 바람 따위와 성격이 뚜렷이 다른 까닭에 단순한 기능적 요인들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대신에 정치 지도력의 본질을 구성하면서도 정치권에서 오래 잊혀온 공적 헌신이란 가치, 이에 따른 진정성 요인의 부활이 기본 동력이 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기업형 연구소를 설립한 안 교수는 바이러스 백신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필요한 운영비를 기업과 관공서에서 받아 충당했다. 내가 사회에서 받은 게 있으니 나도 사회를 위해 할 일을 해야 만족감을 얻는다고 그는 동기를 설명한다. 2005년 기업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떠날 때는 주식을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 그는 “저 혼자만 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기업체 임직원들이 역할 분담이 있을 따름이지 위아래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의 삶의 궤적을 보면 안 교수가 공인도 아니면서 정치인 이상으로 ‘공적 헌신’을 실천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백신을 팔아 떼돈을 벌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위 계급의 군의관 때는 사병한테 반말을 못하고 “이것 좀 해줄래요?”라고 할 정도로 ‘착한’ 면모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은 안철수 바람을 두고 “한나라당은 사형선고를, 민주당은 무기징역을 받았다”고 비유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가운데는 공적 헌신 이력을 토대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우선 적다. 대신에 검사나 판사로 상당한 고위직을 지내고 더 올라갈 자리가 없으니 정치에서 활로를 찾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야당에는 민주화운동 출신자가 많지만 대표적으로 386 세대부터 새 인물의 진입을 막으려 애쓰는 폐쇄적 기득권 구조가 형성됐다. 여야가 안철수 바람 앞에 취약성을 드러낸 이유다.

하지만 안 교수는 역시 미숙하다. 시장 출마 문제를 갖고 대중 앞에 선 첫날 그는 “(여야) 양쪽에 다 문제가 있다”고 했다가 이내 “한나라당 응징”을 단언했고, 이틀 뒤에 다시 “한나라당 응징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안 교수가 ‘역사 흐름’을 소중히 여기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모호한 정치언어가 신념 체계의 일관성을 의심하도록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어제 박원순 변호사와의 전격적인 후보 단일화도 좀 그렇다. 후보 단일화라고 하면 대개 공동의 정책을 실천하고자 선거에서 협력하고 그 결과 공동정부를 세워 운영하기로 하는 약속을 말한다. 무엇보다 공유하는 정책과 철학을 잘 다듬어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묻지마 단일화’가 되어 시민들의 감동과 지지를 얻기 어렵다. 당사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밀감이 계기가 될 순 있지만 그것은 일부분일 따름이다.

앞으로 안 교수가 다른 공직 출마를 또 꾀할지는 모르겠다. 만약 한다면 정치적 책무성(accountability) 문제를 고민하고 훈련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의사로서,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서, 기업 경영자로서, 교수로서 그의 개인적 성취를 충분히 존중하고 평가하지만, 안 교수가 세상에 좀더 큰 흔적을 남기기를 바란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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